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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ds

입양했을 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by Deborah 2009. 7. 14.

헵시바 공주를 지켜주는 유진 왕자님..ㅋㅋㅋ 둘이는 정말 친하다.. 세상에 어느 누구보다.



오늘은 입양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합니다. 두 아이를 입양을 했습니다. 작은아들과 작은딸입니다. 물론 슬하에 두 자녀가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두 아이를 입양을 결심하게 된 동기는 남편과 만나서 테이트 하던 시절에 했던 약속이 있습니다. 남편에게 그랬습니다. 우리 결혼 하면 꼭 아이 하나를 입양하자. 그 말을 들은 남편은 흔쾌히 그러겠노라고 말을 했고 그리고 그 약속을 지켜 줬습니다.

작은아들은 한국에서 2002년도에 입양을 했습니다. 당시 아들을 입양했을때, 우리 큰아들이 4살이였고, 큰딸이 6살이였습니다. 막내아들 유진이를(10개월) 입양을 하고 몇달이 지난후에 있었던 일입니다. 하루는 차를 몰고 시내를 가고 있었던 중이었는데, 큰아들이 그럽니다. "엄마.. 재(유진이) 도로 한국에다 데려다 주면 안 돼?" 아.. 이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많이 아프더군요. 내 몸으로 낳은 자식이나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나 다 마찬가지 일진데. 우리 큰아들은 나와 같은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큰아들에게 설명을 잘 해주고 이제부터는 네가 형이닌까 동생을 잘 보살펴주고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4살의 생각에서 나올 수 있었던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아팠습니다.

엄마는 헵시바만 좋아해..엄마는 헵시바 사진만 찍어..(사실은 그게 아니란다.)


그 후로 우리에게는 더 이상의 입양을 하지 않을꺼라는 생각과는 달리 또 하나의 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물론 저는 한국 아이 입양을 원했지만, 한국 정부에서는 이미 세 아이가 있는 가정에는 더 이상 아이를 입양 시키지 않는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중국이였습니다. 하지만, 중국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 비용이 많이  들어 가는것입니다. 도저히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아서 중국아이 입양을 포기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치 않게 보게 되었던 안젤리나 졸리의 딸 자하라를 보면서, 아 ! 바로 이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부 색깔이 다르면 어때? 우리 부부도 아프리카 아이를 키우는거야. 그래서 결심하게 되었던 것이 헵시바의 입양이었습니다.

헵시바의 입양은 3년이나 긴 시간을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3년을 기다리면서 주위에 많은 분들이 물어 보시는 질문이 한결 같이 이 말은 빠트리지 않고 하시더군요. 특히 한국분들은 이말은 빼 놓지 않고 하십니다. "아이가 셋도 모자라서 또 입양을 한다고.. 힘들지 않겠어?" 물론 힘들겠지요. 염려 되어서 해주는 말은 알겠지만, 그 말을 들었을 때 마음에 상처가 왔습니다. 사람들은 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군아. 그렇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입양을 무슨 유세나 아니면 주위에 보여 주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나 봅니다. 정말 염려 되어서 말 하신분도 있었겠지요.

그런 상처가 되는 말을 들었을때, 그래 이번에 입양할 헵시바는 잘 키울꺼야..라고 더 다짐을 하게 했습니다. 더디어 헵시바를 입양해서 집으로  데리고 왔을 때 친청 엄마로 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의 첫 마디가 그랬습니다."너 깜뚱이 아이를 입양 했다면서........." 아 정말 가슴 아팠습니다. 깜뚱이 아이라는 표현 그 자체에 눈물이 왈칵 쏟아 질려고 했습니다.

그렇군아. 한국 사람들은 인종 차별이 있군아. 그걸 미쳐 생각지 못했던 것입니다. 엄마에게 실망 된다는식으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제발 그런말은 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는 미안하다고 말 헀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딸이 안타까워서 전화를 했던 것이고 어떻게 말을 하다 보니 깜뚱이라는 표현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난 공주야.. ㅋㅋㅋ



헵시바를 키우면서 또 다시 내가 부모로서 태어났음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헵시바는 공주입니다. 집안에서 공주처럼 행세를 하고 다니니 오빠나 언니에게 밉상일 수 밖에요. 엄마가 잠시 볼일을 보게 되면 큰딸이 헵시바를 돌봅니다. 일을 다 본 후 집으로 오면 큰딸이 하는말이.."엄마..나 헵시바 돌보기 싫어. 나를 시녀처럼 부려 먹으려 해." 다 컨 언니가 그런말을 하는데, 웃음이 나오더군요. 물론 필자는 헵시바와 함께 있으면 오빠나 언니에게 막 대하거나 명령조의 말을 할 때는 삼가하라고 시킵니다. 그런 것을 알고 있는 헵시바는 엄마가 없을 때만 공주 노릇을 독특히 하고 있나봅니다.

헵시바를 키우면서 마음이 아팠던 부분이 있었다면, 바로 아이들이 이런 말을 할 때입니다."엄마는 헵시바만 좋아해. 헵시바 사진만 많이 찍어..등등" 결코 편애를 하는 것이 아닌데..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마음은 아픕니다. 내 자식은 다 사랑스럽고 예쁩니다. 누가 더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구분이 안갑니다. 그런 부모의 마음을 읽어 내려 가지 못하는 자식을 보면서 "너희들도 커서 자식 키워 봐라.. " 속으로 이런 말을 되내이곤 합니다.

두 아이를 입양하면서 눈물도 많이 흘렸고, 많은 시간을 사랑으로 그들의 상처를 감쌓주고 친 자식 보다 더 많은 사랑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랑을 부어 주어도 부족하고 그래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아이들이 입양한 아이입니다.

그들은 사랑에 굶주려 있습니다. 더 사랑 받고 싶어 하고 더 많은 걸 받기를 원합니다. 그런 그들의 마음을 내가 잘 알고 읽어 내려가지 못한 날들은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누구나 다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환경 때문에 그런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음에 오늘도 눈에 눈물이 맺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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