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ving in America

[이벤트있슴]미국에서 경험한 이삿짐 포장에서 운반하기까지 ㅠㅠ

by Deborah 2010. 6. 4.


남편이 이틀간 운전했던 버짓 운송트럭은 경쟁회사인 유홀과 나란히 질주하고 있었다.  차 경주를 하는듯한 착각에 빠지게도 한다.



This song gift from Valog. Thank you again. 감사합니다.


5월 중순 즈음에, 에 데보라 가족은 이삿짐을 손수 싸기 시작했다. 이런 광경을 지켜보던 지인들은
"왜 이사짐 센타 놔 두고 이렇게 사서 고생 해?" 라거나 "남편이 군종 목사님이라면서, 그럼 미국 군대에서 직접 포장 이사를 공짜로 해주지 않나?" 라고 내게 말을 하곤 했었다.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씁쓸하게도 이번에는 군대에서 직접 이사를 해주는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남편이 노스 캐롤라이나로 가게된 결정적인  이유가 포트 브랙(미국의 공수부대 Fort Bragg)의 군목이 이번에 아프카니스탄으로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은 그 사람의 후임으로 일년간 일을 하게 된 것이었다. 일년간 계약적으로 일을 하게 될 경우에는 군대에서 해주는 포장 서비스 같은 것은 바라기도 힘든 상황이다. 가족과 함께 있고 싶으면 직접 사비를 들여서 이사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찍었던 기념사진이다.


이삿짐을 싸는 것에서 부터 이삿짐 트럭에다 싣는 모든 것을 우리 가족과 몇몇 교회에 친분이 있는 분들이 나와서 도와 줬다. 무사히 이삿짐을 싸고 출발하는마지막 밤에는 친구 제니와 함께 미국식 노래방겸 바를 방문했다. 그녀와 함께 추억의 노래로 불렀던 곡은 바로 REO Speedweagon "Keep on loving you"라는 곡이였다. 정말 노래를 부르면서 눈물로 작별 인사를 하고 마지막 깊은 포옹을 나눈 후에 집으로 돌아 가는 길은 정말 슬펐다. 마치 정든 친구를 다 여기다 남겨두고 나 홀로 먼 곳을 떠나는 적막함이란 이런 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도 들게했다.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우정을 보여주었던 미미가족들과 기념 사진을 찍었다.


이런 감정들과 싸움을 하면서 잠을 설치면서 이사를 가는 마지막 날은 나의 친한 친구인 미미(가명)가 온 가족을 대동해서 마지막 남겨진 짐들을 이사짐 트럭에다 실어주고 집안 청소까지 깨끗하게 해주고 우리는 또 한번의 깊은 우정의 포옹을 나눈 후에 작별을 고해야했다. 남편은 거대한 이사짐 트럭을 운전하고 필자는 남편의 트럭 꽁무리를 따라 가면서 이틀을 거쳐서 도착한 노스 캐로라이나의 보금자리는 진흑 같은 밤 안개속에서 맞이 하는 힘든 여정의 노고한 몸을 이끌고 남편이 머물고 있는 미국 정부에서 나온 아파트를 방문했다.


와.. 정말 멋진 아파트였다. 마음속으로 이 아파트가 우리 집이 되었으면 더 좋았을걸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남편에게는 내색하기 힘들었다. 남편은 가족과 함께 한다는 자체가 기쁨이자 행복이였다. 물론 필자도 그 마음을 100프로 이해하고도 부족함이 없었다. 남편은 노곤한 몸을 침대에 의탁하면서 잠을 일찍 청했고, 아이들은 여전히 원기가 넘쳐나 보였다. 인터넷이 되고 하니, 인터넷을 하기에 여념이 없는 큰딸 아라와 큰아들 한울이는 시간이 가는줄도 모르고 있었다.

새집 앞 마당에서 놀고 있는 나린이 모습. 사진기를 의식한 나머지 포즈를 취한다.


반면에 작은아들 가온이와 막내딸 나린이는 디지니 채널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우리집은 본래 캐이블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어느곳을 방문을 해도 텔레비젼이 나오면 자연적으로 넋이 나갈 정도로 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모든 시설들이 남편에겐 만족감이 없었던 큰 이유가 바로 가족이 함께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그의 말도 의미가 있어 보였다.


여전히 포즈잡기에 여념이 없는 나린양은 이제 이곳이 새로 살 집이라는걸 알고 있을까?


미국에서 이사를 직접 해 본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였기에 많은것을 알 수 있었다. 이삿짐을 옮기려면 트럭이 있어야하고, 많은 시간을 걸쳐서 다른 주로 이사를 해야 한다는 단점도 있었다. 이삿짐을 친구의 도움이 없이 혼자서 해내기는 힘들었다. 남편의 친구 폴이 와서 도와 주기로 했다. 폴은 다음날 잘 생긴 아들 짐을 데리고 와서 이삿짐을 나르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남편이 아이들에게 친구와 그의 아들이 함께 온다는 이야기가 떨어지게 무섭게 아라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아라: 아빠.. 짐은 몇살이에요?
아빠: 15살일껄.
아라: 그럼 잘 생겼나요?
가족모두 이런 아라의 생뚱 맞은 질문에 박장대소하고 말았다. 그 다음날 남편 친구 폴이 데리고 온 짐을 처음 본 가온이가 내게 달려 와서 하는 말이 있었다.
" 엄마.. 짐은 정말 잘 생겼어."


우리 한울이도 폴의 아들처럼 믿음직했으면 좋겠다. 아직도 철이 없고 말썽만 피우는지라 마냥 부러웠다.


딸아이의 시선은 이미 짐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라는 실망이 역력한 눈치다. 15살로 알았던 그의 나이가 14살로 둔갑했고, 나중에 하는 행동을 지켜 보니 꼭 한울이와 같았다. 마치 한울이를 옮겨놓은 디코이쯤으로 보였다고 하면서 불평하는 눈치다.

"엄만.. 저렇게 생긴게 잘 생긴거야?"
"그럼 잘 생겼지 안 그래?"
"그럼 생긴건 그렇다고 치고.. 하는 행동이 어찌 한울이하고 넘 닮아서 싫어. 마치 내가 한울이랑 테이트를 해야하는 느낌이랄까?"
"어메.. 누가 너 보고 짐이랑 데이트 하래?"
"에고.내가 또 오버했네."

남편의 친구 폴과 그의 아들 짐은 이사짐을 옮기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렇게 짐과 폴은 우리의 이사짐을 날라다 주었고, 짐은 아주 붙임성이 좋아서  좋아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무런 제약도 없을 정도로 착한 아이였다. 그들이 마지막 이삿짐을 집안으로 들여다 놓았을때, 하늘에선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지더니 어느새 세찬 소낙비로 둔갑하고 말았다.

고마운 짐과 폴에게 저녁을 같이 하자고 제안을 했으나, 와이프가 저녁을 준비 했다고 하면서 사양을 한다. 먼 훗날을 기약 하면서 아쉬운 작별을 했다. 날 잡아서 같이 식사 하자는 식으로 이야기를 끝내 버렸다. 그런 후 우리 가족도 허기진 배속을 채우기 위해서 레스토랑 헌팅에 나섰다.


예전 살던 집에 비하면 위의 집은 아주 낡은 집이라서 청소하기엔 좋겠다는 남편의 말을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남편이 제안을 한다.
"오늘 수고들 했으니,부페 식당 어때?"
아이들은 환성을 질렀고, 그 환성에 못이기는척 나도 덩달아 좋아해 줬다. 그런후 우리 가족 일동은 부페 식상에서 식사를 나누면서 주변을 둘러 보니 바로 옆에 한국인 어르신들이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이런 낯익은 언어를 들어 본 아라는 말한다.

" 엄마. 저기 계신 분들 한국말 하는거 맞지?"
"응. 그런데 우리 아라가 어찌 알았을까?"
"칫. 엄마랑 같이 산지가 16년이나 되었는데 한국어가 어떤식인지 모를까봐."

이런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주변에 흑인 부부들이 우리를 아주 눈여겨 보는 눈치다. 아마도 우리 막내딸 나린이 때문인것 같았다. 나린이가 화장실을 가자고 해서 함께 갔다왔다. 우리 가족이 앉아 있는 곳으로 가는데.
나린이가 외치듯 말한다.

" 아빠.. 아빠.."

이렇게 달려든 나린이를 백인 아빠는 뽀뽀를 하면서 안아 주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인 엄마는 한국말을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인상적이였던 모양이다. 우리 가족은 어디를 가든 인기가 사그라들지 않는다. 주변의 관심 100프로가 우리 가족으로 많이 쏠린다. 이런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 이런 이삿짐을 나르면서 이삿짐을 직접 싸고 하면서 느낀 점이라면, 정말 이사는 못할 짓이라는 것이다. 죽어도 다시 이사를 하라면 안 할것 같은데도, 상황이 닥치면 또 하게 되는것이 인간이 아닐까.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거실에 걸어 두었던 툼스톤에서 찍었던 가족사진은 추억의 한 장면이다.


문득 마지막으로 남편의 버짓 이삿짐 트럭 꽁무늬를 따라 가면서 생겼던 에피소드로 이사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까 한다.

운전을 장시간 하다 보면 늘 아이들은 이런말을 꼭 한다.

" 엄마..나 화장실 가야 해."
" 아까 10분전에 갔다 왔잖나."
" 그래도 가고 싶어."
" 이런..녀석 너 화장실 안 갔었지?"
화장실을 가야할 시간에 화장실을 가지 않는 아주 독특한 취양을 지닌 가온이는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 엄마..나 지금 쌀것같아.. 나 지금 쉬 나올것 같단 말이야."
그래서 남편 핸드폰으로 연락해서 다음 휴게실에서 쉬자고 했다. 그런데 운이 없었던지.. 휴게실은 10분을 달려도 보이지 않는다. 급기야는 이런말을 한다.

"엄마 나 그냥 여기서 소변을 볼래."
"이런..너 정말..그러면 죽는다.."


협박을 해도 먹히질 않는 순간에 한울이가 한 마디 한다.

"가온아..그래 좋아. 여기서 소변 보고 싶으면 봐도 돼..근데 말이지..난 네 친구랑 주변 사람들한테 다 이야기 할거야. 가온이가 차안에서 오줌을 쌌다고 말이지. 얼레리 꼴레리 가온이는 차 안에서 오줌을 쌌데요."

하하하.. 이런 협박을 들은 가온은 최대한 참고 참았다. 더디어 남편이 휴게실을 찾았다.

휴게실에 도착하자마자 아들은 총알같이 달려서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5분이 지난 후 내게로 와서 하는 말이 웃겼다.

" 엄마.. 나 드디어 해냈어!"
"뭘?"
"오줌을 안 싸고 화장실에서 볼일을 다 봤다구."
"오..우리 아들 자랑스럽구나."

마치 막내아들 가온은 자신이 무슨 큰일을 이루어 낸 사람처럼 의기양양한 모습이였다.

Event item is different than this picture. This is the dream chatcher.



공지
이제서야 인터넷이 가능하게 되었네요. 이사짐이 다 정리 되는 대로 글은 종종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가끔 방문이 뜸 하더라도 서운해 하지 마세요. 제가 다 기억하고 있으니 일일 방문을 날 잡아서 할게요.

이사를 하다가 느낀점이 있었다면, 제가 없는 공백 기간에도 꾸준히 블로그를 찾아 주신 분들이 많이 있네요.
위의 글 아래로 댓글을 달아 주시면 한 분에게 Dream catcher(드림캐쳐)를 선물로 드릴까 합니다. 이벤트 선물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댓글을 남겨 주실꺼라 믿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방문해주시는 발길이 있어 블로그 할 맛이 나는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