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과거
친엄마 찾아 달라고 했다
내가 진짜 엄마였으면 했다
엄마의 사랑을 더 받기를 원했다
사랑이 고파서 먹는 것을 많이 먹었다
사랑은 나누어 주어도 늘 부족했다
그들은 밤이 되면 두려움에 사로 잡히기도 했다.
present
현재
친엄마를 찾는 것을 포기했다
그냥 엄마가 있어 나의 엄마라 좋다고 했다
사랑은 나눌수록 깊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제는 사랑에 굶주리지 않았다
그 사랑의 깊이를 알기 때문에 헤어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이 둘을 입양할 결심을 했을 때, 주변의 반대가 극심했다. 특히 나의 영원한 지지자로 남아 줄 것 같았던 엄마의 반대가 심했다.
"깜둥이 사는 나라에 애를 입양해서 뭐하라고 그라노. 지금 있는 애도 키우기 힘들잖나. 그냥 포기하고 있는 애나 잘 간수해라."
이 말은 우리 막내를 입양을 결정했을 때, 내게 날아온 화살 같은 말이었다. 그 말이 늘 신경에 쓰였지만, 친정어머니는 나의 마음을 잘 알기에 모든 것을 받아 드려 주었다. 우리 막내를 데리고 한국에 나갔을 때 다들 아프리카에서 온 천사라고 할 정도로 예뻤다. 친정어머니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막내 었다. 막내는 사랑을 어떻게 받는지 어떤 행동을 하면 주변 사람이 사랑을 더 많이 해주는지 안다. 막내의 생존 방식이라고 해두자. 그리고 막내는 똑똑했다. 어디를 가도 오빠를 챙기고 뭘 해도 자신만만했다. 그런 막내가 오빠와 헤어지고 이곳 콜로라도 주로 왔다. 오랜만에 오빠를 보게 된 막내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알게 되었다.
이상하게 우리 아이들이 싸우면 두 패로 싸움이 났다. 한패는 내가 가슴으로 낳은 아이고 또 다른 패는 내 유전자를 이어받은 아이 었다. 특히 우리 장남인 한울은 가온을 입양할 당시 질투가 심해서 심술을 부릴 때가 많았다. 그런 어느 날 엄마는 화가 나서 차를 세웠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아직 12개월도 채 되지 않은 가온이 보는 앞에서 큰 아들을 야단을 쳐야 했다.
"한울아. 지금 옆에 앉아 있는 아기는 네 동생이야. 엄마가 한국에서 데리고 온 아주 특별한 동생이란다. 너 엄마한테 동생 하나 낳아 달라고 했잖아. 봐.. 여기 예쁜 동생이 있잖아. 그리고 동생을 한국으로 보내라는 말 함부로 하면 안 돼. 이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네가 형이고 하니 동생을 지켜 줘야 한다. 알았지?"
대충 이런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기억 속의 그 장면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 후 한울은 절대 가온을 한국으로 보내라는 말을 입밖에 내지 않았으며, 동생을 잘 챙기기 시작했다. 사고를 둘이 치면 늘 혼나는 것은 한울의 몫이었지만, 그것도 다 감내하고 동생으로 받아 드렸다.
입양한 20년 후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그들의 인생은 생부모를 떠나 입양한 가족의 부모와 행복한 삶을 살았다 라는 멋진 문구로 글을 맺으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부족한 나의 필체로 그들과 함께 했던 20년의 삶의 창고를 뒤적거려 본다.
"그래.. 우리 아들, 딸.. 사랑한다. 엄마 줄 수 있었던 최고의 선물은 하나님을 알게 해 주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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