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 숫자를 보고 폭소한 사건이다. 오늘은 머리도 많이 아프고 이틀째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다. 이것이 약의 부작용으로 매일 약을 조절할 때마다 수난을 맞이 한다. 의사가 바뀔 때마다 나는 그들의 실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지금 잠을 못 자고 잠비처럼 지내야 하는데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파온다. 아... 아프다고 남편이나 아이들 한테 하소연할 수도 없다. 내가 아프면 남편도 아이들도 걱정한다. 그냥 잠이 안 온다고 남편 한데 말했더니 그래도 잠을 청해 보라고 한다. 약의 부작용으로 불면증이 오고 음식의 입맛도 없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다가 약의 수치를 재 조절하면 몸무게는 요요현상으로 고무줄처럼 늘어난다. 그래서 운동을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는데, 날씨가 추워 방콕을 하고 있는 날의 연속이다.
독서는 잘하지 않는 아내가 책을 보기 시작했다. 남편은 이런 현상을 보고 아주 좋다고 박수를 쳤다. 하지만 그 꼬부랑글씨가 적힌 영문 원서로 독서를 한다는 사실을 남편은 몰랐다. 독서는 언제 끝이 날지 모른다.
생전 아버지 모습
예전에 아버지 원망을 많이 했다. 둘째 딸을 유독 싫어하는지 집안의 물건이 없어지면 다 나의 탓으로 몰고 갔다. 물론 하지도 않은 짓도 내가 다 뒤집어쓴다. 아버지는 그러면 안됐다. 아버지는 여전히 그 당시 권위 있는 모습으로 야단만 많이 쳤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어린 마음에 매을 들 맞겠다고 맨발로 줄행랑을 쳤을까. 밤이 오면 할머니 집으로 몰래 숨어 들어갔다. 그 당시 할머니는 피난처였다. 할머니는 아버지를 숭배했다. 아버지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들어주는 그런 할머니 었다. 그래서일까. 아버지는 유아독존으로 우리 집의 독재자로 군림했다. 모두 그의 행동 하나에 숨을 죽이면서 지냈던 날들도 있었다. 그러던 아버지가 어느 날, 아프다는 연락이 왔다. 그 당시 나는 외국에 있었다. 한국의 삶은 미련이 없고 그래서 외국 사람 만나서 이민을 왔다. 아버지로부터 영원히 해방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내 삶에 아버지는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시름시름 앓다가 6개월을 병상에 누워 지내다 한 많은 인생을 마감하셨다. 마지막 임종은 찾아가지 못했다. 나중에 들렸는데 아버지 죽음 앞에서 난 울지 않았다. 울음도 나지 않았다. 그때 왜 안 우냐고 지인이 물었다. 그때의 나의 대답은 나도 모른다 였다.
가끔가다 이런 생각을 한다. 만약에.. 만약에 라는 가정을 하면 옛 추억의 그 장소로 간다. 만약에 오토바이를 타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그 사람의 연락을 받았더라면, 만약에 영어 학원을 가지 않았더라면........ 그 만약이라는 예측을 하고 싶은 마음의 중심을 잡고 뭘 얻으려는지 나도 모른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 있다. 나도 모르게 생각의 퍼즐을 하나씩 맞추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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