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ving in America/The Two of Us

사돈의 마음

by Deborah 2020. 9. 1.

 

아티스트: newsboys

노래 제목:  Strong Tower

 

 

만리타국 미국으로 시집을 어렸을 때 왔다. 그 당시 24살이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미국행을 결심했다. 미국이라면 내 인생을 새롭게 출발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삶이라는 것이 그렇다. 한국의 악몽을 잊어버리려고 미국행으로 왔다고 하지만 결혼 생활하는 내내 그 악몽은 매일 싸워야 했던 수많은 날들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지경이다. 이렇게 글을 쓰는 순간은 내 마음에 조금이라도 그들에 대한 원망으로 내 삶이 얼룩진 지난날에 대한 회상은 아니다. 내가 피해자로 살아야 했던 지난날에 대한 억울함도 아니다. 힘들어도 옆에서 큰 힘을 주는 사람이 있어 견딜 수 있었다고 말하고자 함이다. 미국에 살면서 여러 주로 이사를 세 번 식을 한 기억이 난다. 처음 하와이에서 3년을 지내고 그다음 애리조나 그 후 일로 노이 주 그리고 오늘날 노스 캐롤라이나로 이주하게 된다.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처음 네일숍을 들렸다. 그곳에서 예쁜 동생 같은 네일숍 주인을 알게 된다. 그것이 사돈과의 처음 만남이었고 친절하다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후로 네일숍을 자주 들렀던 이유가 가끔 가다 지난 20살 아픈 청춘의 상처가 생각날 때쯤인 것 같다. 그냥 가서 네일 케어를 한 6개월 정도 하고 난 후였던 것 같다. 사돈으로부터 제안을 받게 된다.

 

 

사돈: 그냥 우리.. 친구 해요. 아니.. 언니 동생요. 언니도 미국으로 오신 사연도 있는 것 같으니 같이 의지 하면서 지내요.

필자:..... 어.. 그래도 될까요?

이런 제안은 처음 받아 보는 것이라 뭐라 말해야 할지를 몰랐다.. 얼떨결에 했던 말이었다. 순간 사돈은 말한다.

사돈: 언니 그렇게 해요. 우리 서로 의지하고 친 자매처럼 지내요. 

필자: 그래요.

사돈: 이제부터 말도 놔요. 언니 친자매끼리 말 높이지 않잖아요.

필자: 아. 그래도 될까?

사돈: 그럼요.

 

 

이렇게 친구 같은 동생으로 7년을 함께 하다가 사돈의 인연으로 연결이 된다. 그때도 사돈과 관계가 안 좋았던 때도 있었다. 그때 그녀가 한 말이 기억난다.

 

사돈: 우리 서로 사돈 말고 언니 동생으로 지내요. 사돈으로 생각하니 정말 힘들어요. ㅠㅠ

 

이렇게 사돈이지만 친구로 지내고 있는 중이다. 서로의 관계 정립은 그렇다. 한 사람의 일방적 행위가 아니라 서로 간의 사회적 풍습과 계약적 관에서 성립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서로의 관계를 사돈이 아닌 친구로 정의를 내렸다. 가끔은 사돈 하면서 농담 삼아 이야기는 하지만, 그래도 친한 동생과 언니 사이가 된다. 그런 동생이 아니 사돈이 오늘은 네일숍을 들렸더니 나를 먹으라고 음식을 내어 준다. 그러면 늘 하는 말이 있다.

 

필자: 노우 땡큐 하하하 (No thank you)

 

이 말은 한국어가 아닌 미국식인데 "괜찮아요."라고 하는 미국식 정중한 사양 방법이다. 사돈도 미국 생활이 오래되어 이해 하지만, 한국식 무자비한 정을 나누는 방법은 여전하다. 떠밀다시피 가져온 음식을 집에서 먹어 보니, 약밥이라고 하던데.. 맛이 제법 있었다. 알고 보니 이 음식도 주변에 아는 지인이 직접 친구를 먹으라고 가져온 것인데, 나를 챙겨준다. 그런 감사한 마음을 오늘 느꼈다. 그 마음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리 외국 생활하는 가운데 나눌 수 있는 정이 있는 한, 기쁨이 넘치는 외국 생활이 된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다. 작은 것에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썩여 있으면 그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만다.

 

친구가 준 약밥.. 맛있다.

 

오늘 작은 나눔에 큰 사랑을 느낀다. 이래서 외국 생활이 외롭지만은 않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되었다. 며느리를 집에 데려주고 오는 길에 잠시 생각을 해보니 내가 살아온 미국의 삶은 이렇게 친구 같은 사돈과 딸 같은 며느리가 있어 더 풍족된 삶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랑은 작은 것에서부터 느끼고 행복으로 연결됨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