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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in America

아버지 같은 시아버님 이야기

by Deborah 2017. 3. 15.



시아버님은 그냥 시아버님으로 다가오신것이 아니였다. 나에게 있어서는 아버지와도 같으신 분이였고 그래서 난 호칭을 아버님 대신 친딸처럼 Dad(아빠)로 불렀다. 그런 애교스런 며느리가 마음에 드셨던지 매일 며느리 전화 번호만 아시고 연락을 주신다.  


애야..잘 지냈니?


네..아버지..잘 지내셨어요? 궁금했는데..제가 연락을 했어야 했는데 이렇게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넌 직장 다니라 바쁘잖니. 이번에 노인들 있는 시설이 잘 되어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단다.


그럼 복지시설로 들어 가신거에요?


아니..그런 복지시설이 아니라 여긴 아파트야..내 개인집 처럼 살수 있는 곳이란다. 간호사가 하루에 몇번씩 방문하고 있어서 내 건강 상태도 봐주고 한단다.


아버지 살기는 어때요? 마음에 드시나요?


응 살기 좋아..다른 애들은 잘 있지?


네 애들은 잘 지내고 있어요. 아버지...조나단(아들) 바꿔 드릴까요?


그래..할말은 없다만 바꿔줘라.



이렇게 아버지와 통화를 하면서 느낀점은 며느리인 필자와 통화가 더 즐거우신 모양이다. 남편과 통화는 고작해봐야 5분을 못넘기고 끝이난다. 이번 전화통화를 통해서 아버지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으신지 노인들이 거주하는 아파트로 이사를 가셨고 그곳에는 메디컬 스탭들이 노인분들을 관리를 해주고 있는 모양이였다.


며느리로서 불효를 하는건 아닌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직장 그만두고 아버지를 모셔도 될것 같기도 했지만, 남편은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런 생각에 반대를 하고 나섰다. 아버지의 의견을 존중해주자는 말을했다. 아버지가 오죽하면 개인 아파트로 갔겠냐는 말을 했다. 자식들한테 피해를 끼치기 싫어서 그런것 같다고했다. 


아버지는 4년전에 뇌졸증 현상을 몇번 지나고나서 이제는 이름을 기억을 못하신다. 필자의 이름을 사랑했던 옛부인의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으며 남편의 이름은 큰아들 이름로 둔갑해서 불려졌다. 이런 아버지의 변화에 충격을 받았던것은 남편이였고 그렇게 유식하던 아버지의 모습보다는 이제는 나약해진 모습이 안스러웠던 모양이다.


예전 대학교수였던 아버지의 모습이 사라지고 이제는 영어 단어의 뜻을 머리속으로는 알지만 그 단어를 표현하는 능력을 상실해 버리셨다. 그래서인지 때로는 밥을 가지고 스파케티라고 할정도로 언어감지력이 많이 후퇴 되었음을 느꼈다. 


아버지가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며느리인 내가 모시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아버지의 고집에 굴복 할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를 향한 마음이는  쓰이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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