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음악을 말할때, 콘서트는 항상 그들의 대명사와도 같이 팬들과의 소통으로 알려져 있지요. 많은 밴드들이 세기를 넘나드는 밴드 라이브 공연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아래에 소개되는 밴드들은 세기의 영향을 미친 라이브로서, 영원히 기억에 남을 공연으로 팬들 가슴속에 남아 있을겁니다.
The Beatles at Shea Stadium (August 15, 1965)
첫번째로 소개하는 밴드는 바로 라이브의 획을 그어놓은 밴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비틀즈는 여러분도 잘 아실겁니다. 비틀즈가 영국에 알려지고 유명세를 타고 있을 당시 미국의 실라 스테디움에서 1965년 8월 15일 공연을 가졌습니다. 비틀즈가 미국인들에게 도장을 확실하게 찍어 놓은 그런 공연이였지요. 위의 공연이 왜 유명하느냐 하면 처음으로 시도한 대형 라이브 공연이라는 점과 더불어 소녀팬들 인기몰이를 실감케 해준 라이브 콘서트였지요. 비틀즈의 록 정신이 가득 채운 경기장의 멋진 퍼포먼스도 한 몫을 했지만, 공연 티켓이 매진 되었을 정도로 인기를 실감하게 된 공연이였지요. 실라 스테디움으로 몰려던 관중은 무려 56,000명 가량 되었으며, 경보요원이 2,000명을 고용했을 정도의 대규모 콘서트였지요. 비틀즈는 과감하게 이것이 라이브라는 것을 대중들에게 보여주었고 소녀 팬들은 꽃미남 밴드 맴버들의 외모와 더불어 멋진 노래 실력에도 반해서 쓰러진 분들도 있었고 울면서 그들의 공연을 지켜 봤다는 후문이 전해지는 공연이였지요. 감동 그 자체가 함께 했던 공연이라고 알려진 비틀즈의 세기를 넘나 들었던 공연으로 기록 되었습니다. 비틀즈가 들려주는 "나는 괜찮아." 로 그 당시의 열광의 도가니 현장으로 가 보시겠습니다.
I Feel Fine
Jimi Hendrix at Woodstock (August 18, 1969)
뉴욕의 베델이라는 곳에서 1969년 WoodStock 록의 향연이 펼쳐지게 됩니다. 그 당시, 새벽 3시 공연을 예정했지만 비가 내려서 아침 8시로 무대 시간이 변경이 되었지요. 지미핸드릭스 자신은 무대위에 서면서 밴드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Gypsy Sun and Rainbows. For short it’s nothin’ but a Band of Gypsies,"(무지개와 떠오르는 집시. 간략하게 말하자면 집시 밴드입니다.)
지미 핸드릭스라는 인물은 기타를 배우는 분들의 신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지미의 기타 실력은 세기를 넘나들 정도로 멋진 연주 실력을 발휘해주고 있지요. 1969년도의 록 페스티벌 공연은 미국의 히피문화가 성장하던 시기에 가졌던 공연이였지요. 히피족들의 자유로운 영혼이 잘 어울려진 공연이였고, 그 현장에서 지미가 들려준 노래는 감동 그 자체였다고 합니다. 지금 들어도 멋진 지미의 연주는 아직도 살아서 숨쉬는것 같군요. 들려줄 곡은 지미가 그 당시 연주했던 The Star-Spangled Banner(성조기)라는 곡인데요. 이렇게 멋지게 미국의 성조기를 연주한 사람은 더물것입니다. 지미였기에 가능했던것 같습니다.
The Star Spangled Banner - 지미의 기타는 마치 살아서 절규하듯 들립니다. 아주 멋진 지미의 테크닉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예로 보이는 곡이지요. 그 당시 기후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멋진 연주를 보여준것은 뮤지션으로서의 최상의 쇼맨쉽을 보여준 예가 아닌가합니다.
Led Zeppelin’s Three Nights at Madison Square Garden (July 27, 28 and 29, 1973)
레드제플린의 메디슨 스퀘어가든에서 가졌던 공연은 실로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지요. 그 당시, 레드 제플린의 9번째 미국 투어를 할 때였어요. 박스 오피스의 기록면에서 비틀즈의 공연을 따라 잡을 만한 공연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독창적인 뭔가를 팬들에게 보여줘야만 했었지요. 더 큰 공연장이여야 하고 또한 무대의상 그리고 쇼맨쉽에도 신경을 써야만 했었습니다. 그들의 73년 투어를 회고하면서 기타리스트 지미페이지는 저널리스트 믹스 웰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We were much more ambitious… We really wanted to take the live performances as far as they could go.” (우리는 아주 야심에 차있던것 같아요. 우리는 라이브공연을 통해 이끌어줄 수있는 최대치를 보여주기를 원했죠.)
지미 페이지의 말처럼 그들의 공연은 과히 놀라울 만큼 성공적이였으며, 세기를 넘나드는 공연으로 알려지고 그 당시의 사람들이 지미의 연주에 넋이 나간듯 빠졌다고 하니 어느정도인지 상상이 가실겁니다. 특히 록 밴드는 공연을 라이브로 보여주고 그들의 실력을 인정 받습니다. 물론 그들의 록의 지존이라는 사실을 현장에서 실감케하고 인정을 받았던 공연이였네요. 아마도 보컬리스트 로버트 프랜트와 지미 페이지의 웃옷을 벗어 버린 장면이 소녀 팬들의 가슴에 불을 지펴 놓은것이 아닌가 하네요.ㅎㅎㅎㅎ 이런것 또한 록 공연을 보는 묘미로 여겨집니다.
비틀즈의 바람직한 공연에 비해서 좀 더 화끈하게 무대를 달구어 주었던 밴드가 바로 레드 제플린이라는 밴드였습니다. 드러머 존 본헴의 사망과 더불어 밴드의 생명의 종지부를 찍었지만, 간간히 밴드 구성원이 모여서 팬 서비스 차원에서 연주를 해주는 모습은 아름다움 그 자체입니다. 기억에 남을 밴드..그리고 록 콘서트의 라이브 실체를 제대로 보여준 밴드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오늘날의 모든 밴드들이 레드 제플린의 공연 퍼포먼스를 모티브로 공연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Peter Frampton Comes Alive! (Four Nights in 1975: June 13, June 14, August 24, November 22)
피터 프렘프톤의 1975년 미국 투어한것을 앨범으로 제작 되었지요. 그 앨범이 미국시장에 히트를 치게 되고 6백만장의 앨범을 판매했던 놀라운 흥행을 돋 보였던 앨범으로 알려지고 있어요. 그의 공연이 미국 시장에 히트를 치게 된것은 1976년도였지요. 그 놀라운 한 장의 앨범이 그의 음악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의 나이는 불과 26살이였어요.
꽃 같은 남자였던 피터의 아름다운 외모도 한 몫을 했지만, 그는 기타 연주자로 많이 알려져 있어요. 여러 뮤지션과도 세션을 함께 했었던 분이지요. 얼마전 작고하신 데이빗 보위 분과도 음악적 교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를 떠오르면 생각나는 단어가 있지요. 바로 깁슨 기타입니다. 세계적으로 많은 기타리스트를이 갖고 싶어하는 기타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그의 기타는 세기를 넘나들고 하나의 분신과도 같이 여겨집니다.
2008년도 깁슨기타 사이트에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I told my manager and my record company and my agent, ‘What the hell happens now? How do I stay here?’ I was astute enough to know that the bigger things got, the worse they got, because I had to live up to everything on the next album. I don’t remember a lot of it, not because I took a lot of drugs, but rather because it was too much for the mind to deal with.”
"난 매니져 와 레코딩 회사 그리고 에전트에게 말했죠. 이거 어떻게 된거냐고? 어떻게 여기서 머물러? 큰것을 내가 가질 수록 나쁜것들도 같이 따라오고 있었죠..왜냐면 난 다음 앨범을 위해서 살아야 했으닌까요. 그 당시 기억은 제대로 나지 않아요. 내가 마약을 해서 그런건 아니구요. 왜냐면 너무나 많은것을 한 순간에 겪어야 했고 심리적 부담감이 있었죠."
이렇듯 그의 라이브앨범의 후풍은 대단했었지요. 그의 삶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인터뷰 내용을 보니, 뮤지션의 삶은 고달프고 힘든 삶임을 입증해주는것 같습니다. 그의 멋진 무대 퍼포먼스와 더불어 소녀들의 눈물을 자아내는 감수성이 풍부했던 보컬도 한 몫을 했습니다. 피터는 음악으로 그의 세상을 노래 했습니다. 록 음악의 정신은 라이브에 있음을 라이브 앨범을 통해서 말해주고 싶었던것 같습니다.
Baby I Love Your Way - 그가 직접 작곡과 작사를 한곡으로 알려져 있고 감수성 풍부한 그의 목소리로 인해
소녀팬들의 애간장을 태웠던 라이브라고 합니다.
Pink Floyd’s The Wall Shows (February 1980 – June 1981)
핑크 프로이드는 프로그래시버의 대명사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즉 그들의 콘서트는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공연으로 자리 매낌을 하고 있었습니다. The Wall Shows는 1980년 부터 1981년도까지 이어지는 공연으로 알려졌지요. 네군데의 도시를 넘나드는 공연이였어요. 뉴욕시티, 런던,독일 로스 엔젤레스 등에서 보여지게 됩니다. 로져 워터스의 기발한 독창적 아이디어가 돋 보였던 공연으로서 무대 장치 면에서도 돋보였던 공연이였지요. 914센터 크기의 나르는 돼지 모형을 뛰운다거나, 모형 벽돌을 만들어서 폭팔하게끔 장치를 하는등 아주 무대적인 기술면이 돋보였던 공연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런 공연의 열기를 더 하게 되는건 뮤지션의 음악적 스킬과 더불어 팬들과 함께 교감하는 그들만의 쇼맨쉽이 돋보인 공연으로 해석됩니다. 이의 공연은 핑크 프로이드의 오리지날 맴버가 함께 했던 마지막 공연이라서 더 팬들의 가슴에 감동을 주었는지도 모릅니다.
핑크 프로이드 공연은 더이상 말이 필요없는 공연이죠. 보고 듣는 자체가 감동으로 다가온 라이브입니다. 그들의 독특한 쇼맨쉽이 멋지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세기를 넘나드는 이런 명 콘서트는 팬들 가슴속에 오랜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참고로 위의 콘서트는 60, 70, 80년 초의 가장 화제를 모았던 공연들을 주제로 글을 작성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