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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Art History

현대미술사의 대부: 장 루이 다비

by Deborah 2013. 1. 27.


Jacques-Louis David, Death of Marat



장 루이 다비는 프랑스혁명기를 대표한 화가이자, 혁명가였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프랑스의 피비린내나는 혁명시기였고, 그 당시 그의 예술적 감각 또한 프랑스 혁명을 표방하는 그런 그림을 그렸다. 그는 현대사의 잊혀지지 않는 중요한 인물이고, 오늘날 미술 현대사를 거론할떄, 장 루이 다비를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과 그가 만들어낸 네오 크라시즘의 출발선을 끊는 인물이었다. 그의 새로운 미술적 기법은 많은 예술인으로 부터 새롭게 미술을 보는 눈을 가져다 주었다.


그로 부터 시작된 네오 크라시즘은 바로 고전 그리스의 아름다움을 표방하는것을 말하며, 특히 사실주의에 입각해서 사물을 보고 그대로 그렸다. 크게 특징성으로 따져 본다면, 직각선을 입각한 선과 인체적 균형이 잘 잡혀진 인체 비율, 배경이 어둡고 그림자로 남겨져있으므로 예전의 깊은 공간적 시각의 미는 떨어지지만, 주제와 균형을 이룬듯한 조화를 잘 보여준다. 마치 배경이 잘려진듯한 느낌의 그림을 볼수있다. 그리고 얼굴의 이미지는 무표정의 모습이 대표적인 예라고 보여진다. 그도 그럴것이 장 루이 다비는 혁명시기에 그림을 그릴때 감정을 보여주는것은 약함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던것 같다.


프랑스는 18세기, 루이16세의 왕권을 반대하던 프랑스는 민중들이 프랑스 혁명을 이르킨다. 그 혁명의 중심부에 서 있었던 장 루이 다비는 그림에서도 투쟁과 혁명이라는 그런 메세지가 담겨져 있다.  


장 루이 다비는 결국 정부에서 반동죄로 인해서 감옥행을 가게된다. 감옥에서 그가 자신의 초상화를 그렸고, 그 당시 그는  입술에 종기가 있었고, 그림에서도 보시다시피 입술의 모양이 부자연스럽다. 감옥에서 어려운 투병생활이 시작되었고, 그런 와중에 나폴레옹이 새로운 정권을 잡자 그는 장 루이 다비의 그림을 보고 감탄한 나머지 그를 감옥에서 꺼내주고, 그는 나폴레옹의 국정화가로 채용된다.


아이러니하게도 혁명을 외쳤던 장 루이 다비는 결국 나폴레옹을 찬양하는 찬양주의자로 바뀌고만다. 그는 몇차례의 나폴레옹의 초상화를 그렸다. 나폴레옹 정권의 멸망후, 그는 귀향살이가 시작되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의 귀향살이 와중에도 많은 그림을 그렸고, 그의 그림은 세인들의 놀라움을 살만한 멋진 작품들이었다. 




The Intervention of the Sabine Women




Jacques-Louis David: The Oath of the Horatii



Coronation of Napoleon,1807


Madame Recamier,1800 (네폴레옹의 누이)


Death_of_socrate_1787


Back to Brutus the bodies of his sons,1789



Jacques Louis David



Napoleon




Napoleon at the St. Bernard Pass by Jacques-Louis David


위의 모든 사진의 출처는 원작자에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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