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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in America

Quartermaster Museum(병참박물관)

by Deborah 2018. 7. 13.


2년전 그리스 방문때 찍었던 사진임. 시원한 여름 폭포수를 감상하시라고 올렸봤슴 등장 인물은 상관치 마시고 배경만 감상하시오!






오늘은 어디를 방문할까..고민을 하다가 아침에 반려자님이 쿼터마스터 박물관(병참박물관) 다녀 오는것이 어때라는 말에 솔깃해졌다. 물론 자동차는 반려자님이 가지고 출근을 하셨기에 군대호텔에서 2mils (2마일스) 되는 거리를 걸어서 가야하는 노고가 따랐다. 문제는 가다가 길을 잃어 버렸다. 흐흑흑... 그래서 반려자님에게 전화를 했더니, 부랴 브리핑을 듣다가 나와서 잠시 전화를 받는다고 하면서 용건만 말하라고 하신다.


집에 불이났니? 아니면 다쳐서 911를 불러야 하는 상황이야? 왜 ... ? 지금 많이 바쁜데? 무슨 일있어?

그참..부인이 전화를 했으면 고분하게 전화를 받으시오! ㅎㅎㅎㅎㅎ 

왜..무슨일 있는거야?

네 일이야 있지요. 가다가 길을 잃어 버렸어요. ㅠㅠ 퀘터마스터 박물관 가는 길좀 알려주삼.

응 알았어. 내가 문자로 주소를 찍어서 보내줄께.


처음 전화를 했을때는 황당하시던 반려자님이 나의 고분한 말투에 누그트려진 말투로 문자로 주소를 찍어서 보내 주신다고 하셨다. 3분도 안되어서 반려자님의 문자메세지가 도착하고, 문자에 찍혀진 주소를 가지고 쿼터마스터 박물관을 찾아 갔다. 반려자님 말씀으로는 1마일을 가면 된다고 하셨는데 이건 걸어 보니 1마일이 아니라 2마일 넘게 나오는것 같았다. 아마도 내가 길을 잃어서 다른곳을 헤메인것까지 합치면 그렇게 된것 같기도하다.


더디어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 퀘터마스터의 박물관에 도착했다. 박물관 지기로 사병이 보초를 서고 있었고 그 사병은 나를 중국여자로 오인을 하셨다. ㅠㅠ 그래서 당당히 중국인이 아닌 한국여자라고 말을 했지만 그 사병이 하는 말이 더 웃겼다.


한국여자처럼 안 생겼어요 ㅋㅋㅋㅋ



헉 하하하 한국여자처럼 안생겼다면... 어떤것이 한국여자란 말인가! 속으로 의문이 남겨진 대화를 뒷전으로 하고 쿼터마스터 박물관에 어떤 보물들이 숨겨져 있는지 관찰 모드로 나의 신경의 레이더를 켜고 있었다.






병참박물관 외관 건물의 모습이였다.




쿼터마스터 입구에 보면 이런 기념비가 있었다. 1996년도에 박물관이 개장되었나 보다.



이건 쿼터마스터 예전 건물이 생길때 사용했던 성경책이라고 한다. 아주 오래된 성경책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쿼터마스터 상징인 문양과 군인이 총을 들고 있는 실물사이즈의 밀랍인형이였다. 신기하기만 했다.



병참박물관 입구를 들어가면 연도별로 이루어 놓은 업적을 열거 해놓았다.




병참의 선서 라고 쓰여진 부분을 보니 사명감을 갖고 하는 일임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병참출신으로서 처음으로 이병 Jacob Parrott은 미국의 최고 명예훈장을 받으셨다. 

이분의 공로와 정신을 이어받아  

해병대에서는 Jacob Parrott라는 군함을 만들었다.



미군 최고의 명예훈장를 받으셨던 분의 이야기가 그림으로 그의 공로를 확인하게 되었다.


이건 쿼터마스터였던 장군이 쓰던 책상이라고 한다. 옛날 장군이 여기 있을때 직무했던 책상을 모셔다 놓은 셈이다.



병참이 어떻게 인디언 전쟁때 활용되었는지에 대해서 보여주는 실물도였다.


오리지날 앰블란스의 모습이였다. 예전에는 마차가 운반 수단이 되어서인지 마차로 된 앰블란스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유명한 노르만디 상륙작전에도 병참의 역활이 있었고 이 탱크는 그 당시 사용했던 모델을 그대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병참이 주는 의미는 대단했다.



물자를 옮겨다 놓는 모습이 마치 전시의 한 장면을 묘사한듯 하다.


이게 뭔가 해서 들려다 봤더니 커피를 볶는 기계라고 한다. 처음 보는 물건인지라 사진에 담아 봤다.



병참의 의무중 하나가 이렇게 취사를 담당하는것도 빼놓을 수가 없단다.


병참의 적극적 활용도가 보여진것은 이렇게 전시때 사망한 사람을 태운 마차를 만드는 일도 한다고 한다.

다들 병참이 그저 앉아서 세월을 보내다 군대를 제대하는줄 아는데 그건 착각이다. 병참의 역활이 무한대로 보였고 

이렇게 장례식장에 쓰이는 마차도 만들냈었다.

(이때는 미국의 독립전쟁이 발생하기 전이였으므로 마차들의 활용도가 높았다.)

오늘날의 장례식을 태운 관들을 만들어낸 모양을 병참부대에서 다 해낸다고 한다.



물 수질 관리를 병참에도 전담하게 되어 큰 성공을 본 사례가 있었다. 이제는 수질이 안좋은 그런 곳에서도 안전하게 물을 마실수 있도록 직접 지도를 하기도 했다. 


물을 관리하는 모습을 예로 보여준 밀랍인형과 물파이프관이 보인다.


전시때 사령관이 타고 다녔던 지프와 보급물자들이다.


이것이 참 신기했던것이 세상에 군대에서 사용하는 물병도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서 진화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옛날에는 나무로 만든 물통도 있었다. 정중앙에 있는 물병이 오늘날 미군 부대에서 쓰고 있는 물통이다.


보시라. 옛날 군인들이 들고 다녔던 물통들을..하하하 저렇게 큰 나무통으로 만든 물통을 들고 다니기도 버겁었을것 같다.



헬리콥터 요원들이 물자를 운송하는 장면들을 담았던 밀랍인형의 모습이였다.


예전 사병들의 전시때 입었던 옷도 이렇게 기념으로 보관하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때 사용했던 군수물품을 안전하게 포장을 한 상태를 전시를 하고 있었다. 저렇게 대나무 모양으로 박스를 만들어서 안에다 전시물품들을 넣었다. A-5컨테이너는 총기을 담았던 전시용 컨테이너였다.



또 신기했던건 살아 있는 동물도 이렇게 운반하는  틀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운반해서 군대가 움직일때 따라 갔나 보다.



이렇게 군수물자 컨터이너 별로 이름이 붙혀져 있었다. 이건 A-22컨테이너인데 이 컨테이너가 공중에서 낙하되게끔 사용하게된 사례로 보여진다. 한국전쟁때 공중 군수물자 전달을 처음 시행 했다고 한다. 이것을 보고 전쟁때 군수물자 배달의 원활함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는 사실을 발견한 사례였다.


오늘날 사용되는 군수물자 컨테이너였다. 군수물자 절약형으로 디자인된 컨테이너라고 한다.


Screamer 2K이라고 적혀진 컨테이너였다. 아프카니스탄 전쟁때 

사용된 전시 식량보급 컨테이너라고 한다.



병참의 의무중 하나가 이렇게 직접 빨래를 하는 일이였다. 예전에는 세탁 부대가 있어서 군복을 세탁했다고 한다. 

오늘날도 세탁부대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재봉틀로 옷을 수선하는 일도 병참의 의무중 하나였다.


지금 보이는 말 안장이 바로 유명한 그랜트 장군의 말 안장이라고 한다. 물론 그가 사용했던 수많은 말 안장 가운데 하나였지만 그래도 미국군인들에게는 큰 역사적 증거물일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Ulysses S. Grant(그랜트 장군)이 18대 미국 대통령이된다.


옛날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입고 다녔던 군인들의 예복이였다.


 이렇게 모자와 구두, 부츠 등이 잘 보관되어 있었다.



미국은 올해로 242년이라는 짧은 독립역사를 알게 되었지만, 오늘 방문한 쿼터마스터 박물관을 통해서 이들은 역사의 중요성을 세상에 알리는데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듯 했다. 잘 보관하고 관리된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문화적 훼손 보다는 관리에 집중해서 다가오는 젊은 세대들에게 물려줄 문화유산을 확보하는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 Quartermaster Museum(병참박물관)은 버지니아주 Fort Lee군부대에 있는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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