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라는 단어가 내게 남긴 아쉬움
아버지 하면 내게는 따뜻함보다 먼저 아쉬움과 그리움이 떠오른다.
어릴 적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기억, 그리고 무너진 가족의 이야기는 이전 글에서 더 자세히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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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타국에서 더 크게 느껴졌던 아버지의 거리감
남편을 만나 먼 타국에서 살면서 고향이 그리워 국제전화를 걸던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늘 짧게 말씀하셨다.
“전화 요금 많이 나온다. 끊어라.”
그 말이 그때는 너무 서운했다.
먼 곳에 있는 딸이 걱정되지 않으신 걸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자신의 방식으로 걱정을 표현하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낯선 나라에서 살아가며 느꼈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미국 생활 이야기도 함께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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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경험한 아버지의 따뜻한 질문
어느 날 아버지가 전화를 오래 붙잡고 계셨다.
“어떻게 지내느냐.”
“사는 것은 괜찮으냐.”
“신랑은 잘해주느냐.”
익숙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자상함 앞에서 나는 오히려 어색했다.
그때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눴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버지가 떠난 후 깨달은 사랑
늘 큰소리로 말씀하시고 엄하게 대하셨던 아버지.
나는 그 모습만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 엄함 속에도 사랑이 있었고, 표현하지 못한 걱정이 있었다는 것을.
잃어버린 후에 깨닫는 사랑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도 때로는 시간이 지나서야 깊이 깨닫게 됩니다.

한 장의 사진에 담긴 마지막 추억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찾아보았다.
놀랍게도 남아 있는 사진은 단 한 장뿐이었다.
유진이를 입양하고 친정에 들렀던 날,
남편이 찍어 준 사진 속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가족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 한 장의 사진이 지금은 너무 귀한 추억이 되었다.
이제야 이해하는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께 야단을 맞던 그 시절이 이제는 그립다.
그때는 몰랐다.
그것이 아버지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는 것을.
부모가 떠난 자리에는 후회와 그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 사랑은 시간이 지나도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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