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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in America

아버지

by Deborah 2007.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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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하면 내게는 아쉬움과 그리움을 가져다 주는 단어이다.
사실 어릴적 부터 아버지 사랑을 많이 받지 못했던 그때는 아버지를 참 많이도 원망 했었다.
나이가 들고 20대의 방황기를 걸쳐 남편을 만나 먼 타국에서 지내면서 고향이 그리울때
국제 전화라도 하면 아버지는 두마디를 하고 늘 전화를 끊어 버리셨다.
전화 요금 많이 나온다. 끊어라.. ㅠㅠ
그말이 그때는 너무나 서운했고 그당시 야속 하게만 들렸다.
먼 타국에 있는 딸이 걱정도 안되시나 부다.. 라고 혼자 생각 했었다.
그런 아버지가 어느날 전화를 했더니 전화기를 오래도록 붙잡고 계신다.
어떻게 지내느냐 ..사는것은 괜찮느냐.. 신랑은 잘 해주느냐..등등..
여러가지 질문을 하셨다. 왠지 그런 자상함에 익숙하지 않던 나는 간단하게 이야기를 하고
전화를 끊어 버린적이 있었다. 그때의 아쉬움이 아직도 남아 있다.
아버지는 늘 큰소리로 호통 치시고 엄하게만 다루셨던 그런 모습만이 내 가슴에 남아 있기에
자상함의 아버지는 이상하게만 다가온적이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2년전에 노환으로 인해 병상에서
일어 나지 못하시고 그렇게 하늘나라로 훌쩍 떠나 버리셨다.
아버지 장례식에 참여도 못했고 장례식 다 끝난 저녁에 쌀쌀한 인천 공항의 공기를 마시면서 한국에 왔다는
느낌을 느끼기도 전에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했어야 했다.
당시는 몰랐다. 내가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 지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후에야 얼마나 그리운지
가끔씩 꿈에라도 나타 나면 너무나 기쁜 나머지 손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될때가 있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불효한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가득 하다.
아버지 살아 계실때 잘 해 드리지 못한것이 내내 가슴에 박힌다. 부모는 자식을 세상에 떠나 보내면
가슴에 대 못을 박는 다고 한다. 자식은 부모를 세상을 떠나 보내면 가슴에 깊은 사랑의 상처가 남는다.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찾아 보니 오직 한장의 사진 밖에 없다.
이 사진은 유진이를 6년전에 입양 했을때 친정에 들려서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벤자민, 베사니가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 당시 남편이 사진을 찍어 주셔서 그나마 한장 남아 있는 추억의 사진이다.
옛 추억을 생각하면 눈물이난다.
 아버지께 야단 맞아도 그때 그시절이 좋았던것 같다.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의 방식이였다는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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