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꿈에서 깨어나면 악몽의 하루가 시작된다.
차가운 바람이 볼을 스쳐 지나갈 때, 비가 소나기처럼 내려올 때, 따스함을 주고 우산을 같이 쓰고 갔던 그 사람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때가 바로 이별이라는 사실을 체험하고 깨닫는다.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다는 사실은 그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던 그 사건 하나로 충분했다. 왜 그는 애타게 기다림에 목이 매여서 헤매는 한 소년이 숲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 모습이 불쌍하지 않았다면 이상했을지도 모른다. 모른 척하고 넘어가기로 마음은 작정한다. 아! 순간 그 사람의 마음 아픔이 간접 전달된다. 그렇다고 자선 기부하듯이 사랑을 베풀어 주고 나눌 수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끝이라는 하나의 벽을 마주하고 이제 새로운 한 장의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이 다가왔다. 수 많은 날을 방탕하게 현실 도피를 하고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냥 그 사람만 나를 사랑해주면 되는데, 왜 그것이 힘든 것일까? 그래서 짝사랑은 힘들다고 세인들이 입방아를 찍듯이 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불과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물 잔을 옆에 두고 뭔가를 뒤적이듯이 찾는다. 순간 눈길이 한 곳에 고정되어 버리고 마치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광분하듯이 결정을 내리고 작전에 돌입한다. 그녀의 왼 손에는 물컵이 쥐여 있었고 다른 한 손은 한 줌의 신경 안정제 약이 함께 했다. 이것을 먹으면 세상과 결별이고 아픔과도 단절된다는 사실을 알기에 시도하기로 한다. 아픔을 극복하는 최고의 선택이라 자부하면서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이 행동을 옮긴다. 손의 떨림은 없었다. 마치 그냥 탄산 음료수 마시듯이 물컵을 들이켜고 약은 목덜미를 타고 흐르듯이 몸속 깊이 파고든다.
잠시 정신을 놓고 깨어났을 때, 그곳에 분주한 사람들이 오고 갔다. 그녀는 직감한다. 아. 실패했다. 내가 살아 있었구나. 알고 보니, 주변의 움직임은 의사와 간호사간에 대화 내용이었다.
윙윙 거리는 사람의 소리가 차단되고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깨어났나요?"
그녀는 찡그리듯이 환한 불빛을 피하는 시선으로 말한다.
"아. 여기 어디죠?"
간호사는 영업용 미소로 말한다.
"환자분 무슨 약을 그렇게 많이 먹었어요. 죽을 뻔한 것을 오빠 분이 발견하시고 구급차로 이곳까지 온 거 기억나시나요?"
아차 싶었더니, 결국 나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는데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인간이 여기 하나 있었다는 사실에 광분하기도 했지만, 참기로 했다. 그냥 힘없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원수 같은 오빠라는 말은 그만큼 일생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표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은 일생에 도움을 준 것은 맞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는 마음으로 그녀의 오빠가 병실로 들어오자 애쓰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오빠.. 걱정거리 만들어서 미안해."
"너 괜찮아?"
"응 오빠. 신경 쓰지 마. 알았지?"
"야.. 인마. 어떻게 신경이 안 쓰이니? 나 십 년 감수했다."
이런 말을 하는 오빠의 눈은 눈물이 맺혀 있었다. 동생을 잃게 될까 하는 두려움이 함께 했던 모양이다. 오빠의 고마움을 느껴야 하는 그녀는 고마움 대신 원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냥 내버려 두면 감정적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도 없을 텐데. 왜 그렇게 오지랖을 부려서 더 힘들게 하는 것일까. 그래서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 오빠야..라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러면 더 몹쓸 인간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Gary Wright - DreamWe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