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

from Kids/Hanul 2020. 2. 23. 20:19

미역국을 끓여달라고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며느리: 엄마. 잘 지내시죠?

필자: 응. 넌 입덧이 심하다더니 괜찮니?

며느리: 아직도 밥도 못 먹었어요. 먹은 대로 다 토해내서요. 

필자: 어떡하니? 힘들지?

며느리: 그래서인데요. 미역국 좀 끓여 줄 수 있나요?

필자: 당연하지.

이렇게 며느리의 주문을 받아서 미역국을 끓이려고 준비하는데, 소고기가 없었다. 남편님께 부탁을 했더니 투정을 한다.

남편: 아들은 뭐 하고 있데?

필자: 선거철이라 회사가 바빠서 일 나갔다고 하잖아.

남편: 번번이 그렇게 할 거야. 

필자: 그럼 어떻게 해. 며느리가 한 달간 밥을 못 먹고 있는데. 미역국이라도 먹을 수 있다면 끓여 줘야지.

남편: 난 모르겠다. 당신 마음대로 해.

당신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말은 했지만, 남편의 못 마땅한 모습이 역력히 비쳤다. 그래서 남편을 달래듯이 말해줬다.

필자: 며느리가 먹는 것이 미래의 우리 손자, 손녀가 먹을 음식이라고 생각해 봐. 당연히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남편: 알겠어.

이런 작은 다툼에도 미래의 손자, 손녀가 먹을 음식이라는 말에는 백기를 들고 말았던 남편이었다.

 

미역국을 끓여서 며느리 집에 도착해 보니 얼굴이 말이 아니다. 정말 살도 많이 빠지고 힘든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달간 먹고 토하고 했으니 속이 말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미역국과 밥을 같이 해서 상에다 올려놓고 먹으라고 했다.

몇 숟가락으로 밥하고 미역국을 먹더니 울면서 말한다.

며느리: 엄마. 정말 맛있어요. 그런데 눈물이 나와요.

필자: 울지 마. 아마도 친정 엄마가 생각나서 그럴 거야. 내가 뭐랬니. 외국사람하고 살면 이래서 힘든 거야. 

며느리: 정말 이번에 알겠더라고요. 엄마도 보고 싶어요.

필자: 당연하지. 임신을 하면 부모 마음도 알게 된다고 하잖아. 

며느리를 토닥이면서 안았다. 나도 마음으로 며느리와 함께 울었다. 같이 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생겨서 좋았었다. 며느리의 감사하는 마음이 나한테 전달되어서일까. 마음은 기뻤고 한편으로는 눈물로 번져가는 듯했다.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남편님은 웃는 얼굴로 픽업하러 왔다. 남편께 며느리가 밥을 잘 먹었다는 말을 했더니 미소를 짓는다. 한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필자: 아들, 네 부인 밥을 먹였다. 잘 먹더라. 그리고 행복해하는 모습 보고 왔다.

아들: 엄마 고마워요.

녀석. 전화할 때는 필요한 것 없으니 신경 쓰지 말라더니, 이렇게 엄마가 직접 찾아가서 부인을 돌봐주고 하니 좋은가 보다. 아들은 모른다. 미국에서 성장하고 자라났으니 며느리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다. 정서적인 면에서 극과 극을 달리고 있으니 이런 상황인지도 모르고 먹을 것 사다 놨으니 알아서 먹을 것이라는 식의 말을 하니 며느리도 얼마나 속이 탔을까. 그래도 먼저 전화를 해주고 하니 이렇게 미역국이라도 끓을 수가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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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공수래공수거 2020.02.24 07:47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며느님이 입덧이 아주 심한가 보군요..
    미역국 잘 끓여 주셧네요,
    사랑의 미역국입니다.

  3. 구름 달빛 2020.02.24 08:44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그날 미역국 맛은 평생남을거같아요

  4. momo is 2020.02.24 09:48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임산부들에게 미역국은 정말 좋은음식인것 같아요 호주에서도 미역국에 대해 소개를 하고 산모들에게 권장한다고 하더구요
    따뜻한 내용 잘보았습니다.^^

  5. 파아란기쁨 2020.02.24 09:49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며느리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보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

  6. 실버키 2020.02.24 10:47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데보라님이 계셔서 다행이네요. 임신때는 정말 힘든데 게다가 입덧이 심하시니
    사랑이 넘치는 가족이네요 ^^

  7. 싸나이^^ 2020.02.24 10:55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며느님 입덧이 아주 심한가 보네요.
    저땐 정말 옆에 있는 사람이 더 힘들잖아요.
    그래도 데보라님이 끓여준 미역국을 잘 먹었다니 얼마나 좋아요 ? ㅎㅎ

  8. 네이프리 2020.02.24 15:24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며느님 되시는 분께서 많이 힘이드셨나봅니다. 데보라님께서 진심으로 챙겨주시며 며느님과 나누신 대화를 보니 저도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졌어요. 며느리 되시는 분께서도 결혼을 하면서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오신건가요? 태어나지 않은 나라에서 생활하는데 아프면 너무 힘들죠ㅠㅠ 데보라님께서 따뜻한 버팀목이 되어주셨네요.

  9. 담덕01 2020.02.24 16:19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 남편분 반응이 의외네요.
    이게 미국과 한국의 정서 차이인 가 보군요.
    결혼까지 한 아들내외에 대한 생각이 다른 거 같아요.
    그래도 Deborah님이 중간에서 잘 하고 계시는 거 같은데요. ^^

  10. 이청득심 2020.02.24 16:26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며느리를 위하는 데보라님의 마음이 참 따뜻하게 전해 옵니다....ㅎㅎ
    미역국으로 며느님께서도 큰 힘을 얻었을것 같습니다..ㅎ

  11. 배덕이 2020.02.24 17:53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며느리한테 미역국 끓여주는 시어머니 너무 좋으세요^^ 입덧하는건 정말 힘든시기죠.. ㅜㅜ 빨리 입덧이 끝나고 잘드셨음 좋겠네요.
    저도 산후조리 한다고 열심히 미역국을 먹는 중인데 ㅎㅎ 미역국은 임산부나 산모에게 참 좋은거같습니다.

  12. 핑구야 날자 2020.02.24 18:09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엄마가 끓여주는 미역국이 최고로 맛있죠 속도 든든해지고 너무 좋지요

  13. Jajune+ 2020.02.24 20:36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훈훈하고 뭉클하네요.
    넘넘 멋지세요~^^

  14. 신웅 2020.02.24 20:55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그래도 잘먹을수 있는게 있어서 다행이에요 ^^

  15. 후까 2020.02.24 21:09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그 미역국에 며느리는 배가 부르기보다 마음이 따듯하게 배불렀을거에요

  16. 블라 블라 2020.02.24 23:54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다행입니다! 그래도 데보라님이 해주신 미역국은 맛있게 잘 드셨다니 :-)

  17. east9river 2020.02.25 06:52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글로만 읽어도 감동적인 스토리네용... 며느리를 위한 미역국 한 그릇, 데보라님의 애틋한 사랑이 눈에 훤히 보여집니다

  18. 기억의스케치북 2020.02.25 07:15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감동입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19. 상식체온 2020.02.25 07:59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미역국이 우리나라 사람에게만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실제로 그런가 봅니다. 건강한 생활을 하시길 기원합니다.

  20. Anchou 2020.02.27 00:28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역시 따뜻한 시어머니시네요 :)
    훈훈해요. ㅎㅎㅎ 저는 내일 생일인데
    셀프 미역국을 끓일 예정이랍니다. 헤헤!

  21. liontamer 2020.03.01 13:28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미역국 사진을 보니 막 코가 찡해지고 글을 다 읽으니 눈시울도 뜨거워지네요 데보라님의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져요. 글구 미역국 맛있어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