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ids/Noel

미역국

by Deborah 2020. 2. 23.

미역국을 끓여달라고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며느리: 엄마. 잘 지내시죠?

필자: 응. 넌 입덧이 심하다더니 괜찮니?

며느리: 아직도 밥도 못 먹었어요. 먹은 대로 다 토해내서요. 

필자: 어떡하니? 힘들지?

며느리: 그래서인데요. 미역국 좀 끓여 줄 수 있나요?

필자: 당연하지.

이렇게 며느리의 주문을 받아서 미역국을 끓이려고 준비하는데, 소고기가 없었다. 남편님께 부탁을 했더니 투정을 한다.

남편: 아들은 뭐 하고 있데?

필자: 선거철이라 회사가 바빠서 일 나갔다고 하잖아.

남편: 번번이 그렇게 할 거야. 

필자: 그럼 어떻게 해. 며느리가 한 달간 밥을 못 먹고 있는데. 미역국이라도 먹을 수 있다면 끓여 줘야지.

남편: 난 모르겠다. 당신 마음대로 해.

당신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말은 했지만, 남편의 못 마땅한 모습이 역력히 비쳤다. 그래서 남편을 달래듯이 말해줬다.

필자: 며느리가 먹는 것이 미래의 우리 손자, 손녀가 먹을 음식이라고 생각해 봐. 당연히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남편: 알겠어.

이런 작은 다툼에도 미래의 손자, 손녀가 먹을 음식이라는 말에는 백기를 들고 말았던 남편이었다.

 

미역국을 끓여서 며느리 집에 도착해 보니 얼굴이 말이 아니다. 정말 살도 많이 빠지고 힘든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달간 먹고 토하고 했으니 속이 말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미역국과 밥을 같이 해서 상에다 올려놓고 먹으라고 했다.

몇 숟가락으로 밥하고 미역국을 먹더니 울면서 말한다.

며느리: 엄마. 정말 맛있어요. 그런데 눈물이 나와요.

필자: 울지 마. 아마도 친정 엄마가 생각나서 그럴 거야. 내가 뭐랬니. 외국사람하고 살면 이래서 힘든 거야. 

며느리: 정말 이번에 알겠더라고요. 엄마도 보고 싶어요.

필자: 당연하지. 임신을 하면 부모 마음도 알게 된다고 하잖아. 

며느리를 토닥이면서 안았다. 나도 마음으로 며느리와 함께 울었다. 같이 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생겨서 좋았었다. 며느리의 감사하는 마음이 나한테 전달되어서일까. 마음은 기뻤고 한편으로는 눈물로 번져가는 듯했다.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남편님은 웃는 얼굴로 픽업하러 왔다. 남편께 며느리가 밥을 잘 먹었다는 말을 했더니 미소를 짓는다. 한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필자: 아들, 네 부인 밥을 먹였다. 잘 먹더라. 그리고 행복해하는 모습 보고 왔다.

아들: 엄마 고마워요.

녀석. 전화할 때는 필요한 것 없으니 신경 쓰지 말라더니, 이렇게 엄마가 직접 찾아가서 부인을 돌봐주고 하니 좋은가 보다. 아들은 모른다. 미국에서 성장하고 자라났으니 며느리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다. 정서적인 면에서 극과 극을 달리고 있으니 이런 상황인지도 모르고 먹을 것 사다 놨으니 알아서 먹을 것이라는 식의 말을 하니 며느리도 얼마나 속이 탔을까. 그래도 먼저 전화를 해주고 하니 이렇게 미역국이라도 끓을 수가 있었던 것 같다.

 

노엘아

엄마가 밥을 못 먹는다고 한다.
아마도 널 품고 있어
입덧을 하고 있었나 봐
그래서 할머니가
미역국을 끓여서 갔다 줬다.
그랬더니 너무 잘 먹더군아.


넌 너의 엄마의 배속에서
잘 자라주면 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