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그날 밤, 한숨도 잠들지 못했다.
너무 많은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와 마치 물을 가득 머금은 스펀지처럼 몸과 마음이 무겁게 부풀어 있었다.
이미 내 판단은 한계를 넘어선 상태였다.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아침이 되어 충혈된 눈에 안약을 넣고, 세면대 앞에 선 초췌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밤새 무너졌던 감정들과 달리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제자리에 있었다.
단지 변해버린 것은 진영과 나의 마음뿐이었다.
복잡하게 얽혀 있던 우리의 관계는 조금씩 실타래가 풀리듯 진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특히 진영이 먼저 자존심을 내려놓고 자신의 입장과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는 사실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문득 깨달았다.
고장 난 사람은 그가 아니라, 오랫동안 상처 속에 갇혀 살아온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그 순간, 내 기억은 고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갔다.
그때의 나는 교실 속에서 늘 혼자 떠다니는 외계인 같은 존재였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무리 안에서 어울렸고, 비슷한 환경과 수준의 친구들끼리 자연스럽게 관계를 만들었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라난 나는 그 틈에 쉽게 섞일 수 없었다.
늘 겉돌았고, 결국 외톨이로 남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 반에서 유독 따돌림을 당하던 한 아이를 도우려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그 아이 대신 내가 새로운 표적이 되었다.
아이들의 조롱과 수모는 매일같이 이어졌고, 결국 그날이 찾아오고 말았다.
수업이 끝난 뒤, 일진 아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이후의 기억은 오랫동안 내 안에 녹슨 못처럼 박혀 있었다.
그리고 진영을 만난 뒤부터, 그 상처는 다시 현실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잊고 살았던 과거가 지금의 삶 위에 겹쳐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진영과의 재회는 결국 내가 외면해 왔던 참혹한 현실의 나 자신과 마주하게 만들었다.
멍한 정신으로 하루를 시작한 나는 그대로 회사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안에 멍하니 서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에 살짝 손을 올렸다.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
나는 놀란 채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눈앞의 사람은 회사 직원이 아니라, 마치 오래전 그날의 남학생처럼 보였다.
그 순간 억눌러왔던 기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숨이 막혔다.
나는 그대로 엘리베이터 밖으로 뛰쳐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차가운 세면대 앞에서 숨을 몰아쉬며 한참을 울었다.
마치 오래전 내 안에 눌러 담아두었던 악몽과 공포를 억지로 밀어내듯 감정을 삼켜내고 있었다.
한참 뒤에야 겨우 눈물을 닦아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흐트러진 화장을 다시 고쳤고, 조용히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민석이 환한 얼굴로 나를 반겼다.
“누나, 주말 잘 보내셨어요?”
“응… 넌?”
“저야, 늘 아시잖아요.”
“뭘?”
민석은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누나, 우리 오늘 저녁에 만나요. 꼭이요. 취소하면 안 돼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알았어.”
왠지 이번 약속만큼은 피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민석에게 더 이상 헛된 기대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은 마치 힘없이 떨어지는 낙엽처럼 쓸쓸해 보였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붙잡아야 할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 내 몸은 본능처럼 그 감정을 밀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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