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 나는 무슨 옷을 입고 있었을까.
그의 얼굴 표정은 또 어땠을까.
내 기억 속 그의 모습은, 단정하게 짧게 자른 곱슬머리와 멀대처럼 큰 키였다.
시장 안의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마치 오래된 고목나무처럼 우뚝 서 있던 모습.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나와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가는 데에만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우리 사이의 간격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나는 괜히 손을 어딘가에 올려보았다가 내렸다가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러다 문득, 그의 눈과 마주쳤다.
그 순간 그의 표정은
불쾌함이 아니라,
마치 엄마 몰래 사탕을 훔쳐 먹은 다섯 살 소년 같은 얼굴이었다.
그 사랑스러운 표정과
나를 향해 있는 그의 모든 몸짓을 알아차린 순간,
내 마음은 오히려 아파왔다.
어떻게 하면
이 관계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끝낼 수 있을까.
혼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나의 고민을 눈치챈 듯,
그가 먼저 말을 건넸다.
“왜 말이 없어?”
“아… 그냥 생각 좀 하느라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심각하게 해? 난 안 보이나 봐?”
“하하… 알았어. 신경 쓸게.”
“그럼 고맙죠, 공주님.”
“치… 그런 말 하지 말랬지.”
“알았어.”
의미 없어 보이는 대화 속에서도
그는 분명 사랑의 언어를 담고 있었고,
그 감정은 조용히 내 마음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충분히 통하고 있었다.
차라리 아무 생각 없이 모든 걸 포기해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을 떠올리면
이 사람을 배신하는 선택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언젠가 먼 훗날,
다시 만나게 되더라도
웃으며 인사할 수 있는 사이로 남고 싶었기에.
‘배신’이라는 단어는
내 입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우리는 시장을 몇 바퀴나 돌았다.
그저 걷는 일이 이렇게 기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의 시선은 계속 나를 향해 있었고,
나는 그 시선을 피하려고
시장 상인들과 더 자주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나눴다.
몇 바퀴를 더 돌았을까.
지쳐가는 나를 먼저 알아본 건 그 사람이었다.
그의 눈치는 참 빠르기도 했다.
그는 나를 한 레스토랑으로 이끌었다.
어릴 적,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그런 멋진 공간이었다.
우리는 간판만큼이나 낯선 음식 이름들을 바라보며
서로 눈을 마주치고 웃었다.
그 역시 이런 곳은 처음이라는 걸
나는 그때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냥 주문하면 되는 일이었는데.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의 숨소리,
주변의 공기,
그 모든 것에 지나치게 민감해져 있었다.
심장은 계속 쿵쾅거리고 있었고,
이 상황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이별’을 말할 수 있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사랑이라는 건,
흐르고 또 흘러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
하지만 내 마음은 달랐다.
이 감정을 사랑이라고 부르기조차 미안했다.
그런 미안한 감정을
받아들이고 시작한 것 역시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회사에서도 늘 나를 바라봤고,
내가 웃어주기라도 하면
얼굴을 붉히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그 청춘의 마음을
나는 결국 훔쳐버린 셈이었다.
그런데
이 관계에 ‘마지막’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순간,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시장 거리에서의 두근거림,
레스토랑 안의 무거운 공기 속에서도
내 침묵은 그의 말들에 의해
계속 깨어나고 있었다.
“너 오늘 진짜 이상하다.”
“뭐가 이상해… 아닌데.”
“아니긴. 나한테 할 말 있지?
…헤어지자는 말 말고는 다 들어줄게.”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이 사람…
혹시 내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걸까.
나는 몰랐다.
그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사실이
내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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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사랑했던 나, 그의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그의 검은 테 안경 너머로 비치던 맑고 영롱한 눈빛이나를 향해 빛나듯 속삭이던 그 말은밤새도록 메아리처럼 남아, 결국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게 했다.그랬다.그 순간, 젊음과 청춘이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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