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와 나눈 대화 중 가장 오래 남은 것은 말이 아니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행동들이었다.
보이지 않는 무언의 표현들이 그의 온몸을 통해 전해졌다.
“나, 너 정말 좋아해.”
그는 그 말을 직접 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는 오로지 나만을 위해 고른 것 같은 언어들로 내 마음을 다독였고,
내 안에 단단히 쌓여 있던 사랑의 벽을 하나씩 허물기 시작했다.
그의 말들은 모두 사랑을 향해 있었고,
그 따뜻한 언어들은 어느 순간 화살처럼 내 마음에 꽂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감정들이 내 안에 쌓여가던 그날,
우리는 평범한 연인들처럼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사 중에도 그는 계속해서 내 눈을 바라봤다.
“왜 그래? 잘 못 먹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말했다.
“응… 음식이 별로야, 그치?”
“ㅎㅎ 나도 그 말하려고 했어.”
가볍게 시작된 대화는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서로의 취향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때 웨이터가 다가왔다.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물 더 드릴까요?”
그가 웨이터를 바라보며 말을 건네던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의 표정이 갑자기 바뀌었다.
“혹시… 동문 고등학교 나왔어요?”
“네?… 어떻게 아세요? 맞아요, 작년에 졸업했어요.”
“이야… 나 몰라? 안경쟁이… 너 그렇게 불렀잖아.”
“아… 너? 알지. 맨날 걔 옆에 붙어 다니던 애였잖아.”
그들의 웃음 섞인 대화는 더 이어졌지만,
내 귀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단 하나의 말만 계속 맴돌았다.
“걔 옆에 붙어 다니던 애.”
그 ‘걔’가 누구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한때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그 순간, 잊고 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 이 사람도 그때 그 세계 안에 있었구나.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던 과거가
이렇게 다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결국 나는 스스로 결론을 내려버렸다.
이 만남은, 어딘가 잘못된 것이라고.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그는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미안해. 아는 애라서… 너한테 집중 못 했네.”
“괜찮아. 그냥 밥 먹자.”
그는 조심스럽게 고기를 썰어 내 접시에 올려주며 말했다.
“이거 한번 먹어봐. 맛있어.”
나는 그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고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
천천히 씹었지만, 맛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기억나는 건 오직 하나였다.
그가 끝까지 나를 바라보던 눈빛,
그리고 내 마음을 살피던 그 조심스러운 태도.
그는 분명 진심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마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 관계를 이어갈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내가 좋아했던 사람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으니까.
사랑은 변한다고 하지만,
그 관계 위에서 웃고,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이
어쩐지 어긋난 장면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건 사랑이 아니라고.
하지만 정말 아니었을까.
부정할수록 마음은 더 흔들렸다.
뜨거워졌다가, 다시 차갑게 식어갔다.
그 감정은 어딘가 뒤틀려 있었고,
마치 과거의 누군가를 향한 감정을 비웃듯 흘러갔다.
그렇게 나는 그의 마음을 밀어냈다.
그리고 시간은 흘렀다.
무려 10년이라는 시간이.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 같았던 그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것도,
내가 잠시 방문한 회사의 상사로.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차분하고 이성적인 태도로 미팅을 마쳤다.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그가 나를 불렀다.
“잠시만요.”
“네? 하실 말씀 있으세요?”
“아… 제가 아는 사람이랑 너무 닮아서요.”
나는 잠시 멈췄다가 말했다.
“아니에요. 전 모르는 분인데요.”
“그렇군요. 실례했습니다.”
그의 말투는 담담했다.
예전의 따뜻한 감정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일적인 관계 속에서의,
차갑고 정제된 목소리였다.
그는 예전보다 더 성숙해져 있었고,
더 이상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그날을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함께했던 그 레스토랑,
그리고 그가 했던 마지막 말.
“나랑 진짜 만나고 싶으면… 기차역으로 와. 우리 여행 가자.”
“난 안 가. 기다리지 마.”
“내일까지 기다릴게. 안 온다고 말하지 마.”
그리고 이어진 침묵.
그날 이후,
우리의 시간은 그 자리에서 멈춰버렸다.
그리고 1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다시 만났다.
마치 멈춰 있던 시간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흐르기 시작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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