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검은 테 안경 너머로 비치던 맑고 영롱한 눈빛이
나를 향해 빛나듯 속삭이던 그 말은
밤새도록 메아리처럼 남아, 결국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게 했다.
그랬다.
그 순간, 젊음과 청춘이 흐르던 그 자리에는
내가 사랑했었던 남자의 베스트 프렌드가 서 있었다.
마치
내가 사랑하던 그 사람이
그를 나에게 보내준 선물처럼 느껴졌던 것은 왜였을까.
아마도 그것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하나의 답처럼 받아들이고 싶었던
나 스스로의 위로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수많은 시간을 지나오며,
어느 순간부터 그의 모습은
낯설게도 다정하고,
믿기지 않을 만큼 사랑스럽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우리의 데이트는 그렇게 시작되었지만,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저 그의 입술을 통해 전해지는 말들 속에서
내 마음이 천천히,
마치 녹아들 듯이
그의 마음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감정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분할 수 없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한여름 아스팔트 위에 피어오르는 신기루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느낌.
내가 이 사람을 품는 순간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안개처럼
묘하고 불안한 분위기가 나를 감싸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여전히 언니 집에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고,
언니는 내가 달라졌다는 것을 눈치챈 듯했다.
“너 요즘 무슨 일 있니?”
“왜?”
“아니… 그냥. 뭔가 달라진 것 같아서.”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응, 사실은… 나 누구 만나고 있어.”
“정말? 잘 됐다. 누구야?”
“음…”
“뜸 들이지 말고 말해봐.”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 그게,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남자의… 베스트 프렌드야.”
순간, 언니의 표정이 굳었다.
“뭐라고? 그건 절대 안 돼.”
‘절대’라는 그 한마디가
그날따라 유난히 깊게 박혀왔다.
서운함과 답답함이 뒤섞인 채
그날 밤을 보내고 있을 때,
진영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 뭐 했어?”
“아… 별일 없었어. 넌?”
“너 생각하다 죽을 뻔.”
“하하, 정말 뻔뻔해.”
“왜, 좋아서 그러는데.”
“응… 알아.”
“우리 내일 뭐 할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있잖아… 우리 시장 데이트할까?”
“왜? 보통은 좋은 레스토랑 가고 싶어 하지 않아?”
“치이… 내가 그 여자들이랑 같아?”
“아니. 넌 특별하니까 좋아.”
그 말에 괜히 웃음이 났다.
“그럼 우리 시장 데이트다.”
“응. 잘 자, 이쁜이.”
“또 그런다…”
“이젠 좀 익숙해져라.”
“하하…”
그렇게 달콤하게 스며드는 그의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가슴 깊이 퍼져갔다.
이 감정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이 사랑이 어떤 결말을 향해 가고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었지만,
어쩌면
이미 답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마치 결심이라도 한 듯
그를 만나러 나섰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언제나 봄날 같았고,
그의 모습은
햇빛에 반짝이는 호수처럼
잔잔하면서도 깊게 다가왔다.
내가 한 걸음 다가가면
그는 그에 맞춰 미세하게 흔들리며 반응했고,
그 속삭임과 미소 속에서
나는 또 하루를 살아냈다.
그렇게 우리의 시간은
꿈처럼 계속될 것만 같았다.
…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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