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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 일상 에세이/창작소설

그를 사랑했던 나, 그의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4-

by Deborah 2026. 5. 6.

 

멈춰 있던 나와 그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불안과 그리움,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들이 뒤엉켜 자꾸 입 밖으로 흘러나오려 했다.
하지만 나는 애써 삼켰다. 그 순간, 깨달았다.
우리가 ‘운명’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결국 만나야 할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을.

 

 

진영은 내 마음 속에서 빛과 같았다.
내 청춘이라는 캔버스 위에, 화려함과 우울함을 동시에 그려 넣은 사람이었다.

 

그가 없던 10년은 어땠을까.
그저 무감각이었다. 살아야 해서 살았고, 버텨야 해서 버텼다.
일에 매달린 끝에 회사에서 ‘대리’라는 직책도 얻었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재능을 증명하듯 미술 디자인과를 졸업했고, 나름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였다.
내 삶은 충분히 완벽하다고 믿었다.
그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그가 나를 불러 세웠을 때, 그의 표정은 어땠을까.
반가웠을까.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이었을까.
혹은… 이미 누군가 곁에 있는 사람의 여유였을까.

 

끝없이 이어지던 생각을 스스로 끊어냈다.
지나간 시간을 붙잡을 수는 없으니까.

 

차를 몰고 집으로 향하는 길, 하늘은 내 마음을 닮은 듯 먹구름으로 가득했다.
이내 소나기가 쏟아졌다.

 

“왜 이렇게 날씨까지 나 같지…”

 

와이퍼가 빠르게 움직이는 사이, 빗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 틈을 파고들 듯, 진영의 얼굴이 겹쳐졌다.

 

10년 전, 그날도 이렇게 비가 왔었다.
그는 내 쪽으로 우산을 기울여 주고 있었다.
나는 젖지 않았지만, 그의 어깨는 이미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비 사이로 드러난 그의 모습,
그리고 나를 바라보던 눈빛.

 

그때의 나는, 그의 모든 행동이 사랑이라고 믿었다.
오직 나만을 향한 것이라고.

 

눈물이 났다.
그리워서라기보다,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시간 때문이었다.

 

나는 그의 마음만 훔친 채, 돌아서 버렸다.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는 마지막 열차를 기다리며
나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 생각이 스치는 순간, 눈물이 빗물처럼 쏟아졌다.

 


 

집에 도착한 뒤, 늘 같은 루틴이 시작됐다.
샤워를 하고, 음악을 틀고, 따뜻한 자스민 차를 우려낸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조용히 숨을 고른다.

오늘도 그렇게 하루를 정리했다.

 


 

밤이 찾아왔다.
그가 없는 밤.

 

우리는 함께 밤을 보낸 적은 없지만,
성인이 된 지금도 내 마음은 여전히 10년 전 그날에 머물러 있었다.

 

그를 바라보던 시선,
사랑이라 믿었던 그 모든 순간들이
여전히 내 주변을 맴돌았다.

 

나는 그 감정을 지우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다음 날, 회사로 향했다.

 


 

“오늘 디자인 시안 봤는데, 잘 나왔더라. 고생했어.”

“감사합니다, 부장님.”

“아, 너 지난번에 거래처 미팅 갔었지?”

“네. 무한상사였습니다.”

“거기 담당자가 바뀌었는데, 널 지목했더라.”

“…네?”

“디자인을 너랑 직접 상의하고 싶다던데.”

순간 말문이 막혔다.

“연락처 줄게. 네가 맡아.”

 

속으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언제나처럼, 책임은 아래로 내려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 부장이니까.

나는 감정을 눌러 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걸기 위해 번호를 눌렀다.

왠지 모르게,
이 전화 하나가 또 다른 시간을 움직이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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