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는 평생 강해져야 했다|나의 성을 지켜준 가장 강한 여자
어린 소녀였던 엄마는 살아남는 법부터 배웠다
엄마는 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강해진 것이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해 강해져야 했다.
엄마는 어린 시절 만주로 피난을 떠났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어린 나이에 가족의 생계를 함께 책임져야 했다. 고작 다섯 살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현실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살아남았다.
그곳에서 언어를 익혔고, 주변 상황을 빠르게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은 엄마를 보며 똑똑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린아이였던 엄마에게 똑똑함은 자랑이 아니라 생존의 방법이었다.
전쟁과 피난이라는 시대의 아픔 속에서 엄마는 일찍 어른이 되어야 했다.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진 여자
엄마에게도 사랑이 있었다.
엄마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의 아이를 낳으며 함께 살아가기를 꿈꾸었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사랑만으로 버틸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시집살이는 너무나 혹독했고 결국 엄마는 친정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지금이라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 시대의 많은 여성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참고 살아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생이별한 엄마는 친정에서도 편안하지 않았다.
친정아버지는 엄마를 아끼고 사랑했지만, 당시 여성에게 선택권은 많지 않았다. 결국 엄마는 홀아비였던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
아버지가 엄마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자신의 뜻을 따르고, 자신의 세상을 받아줄 여자를 원했던 것이다.
엄마는 조용히 강해졌다
아버지는 강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상처와 화해의 이야기는 이전 글에서 이어집니다.
→ 아버지의 성이 무너지다|무너진 권위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은혜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었고, 가족 안에서도 자신의 권위를 지키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는 알게 되었다.
자신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을.
그 사람은 바로 엄마였다.
엄마는 아버지보다 더 넓게 보고, 더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는 더 강해져야 했다.
아버지의 폭력 앞에서도,
시어머니의 모진 말 앞에서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버텨야 했다.
엄마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무너지면 자식들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미움받던 시어머니를 끝까지 돌본 사람
엄마를 가장 힘들게 했던 사람 중 한 명은 시어머니였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늙고 병들었을 때, 엄마는 그녀를 외면하지 않았다.
끝까지 곁을 지켰다.
동네 사람들은 말했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마지막까지 돌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강하다는 것은 누군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품고도 사랑할 수 있는 힘인지도 모른다.
울지 못했던 어린 딸을 이해한 엄마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날, 나는 울지 않았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죽음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장례식장에서 울고 있었고, 나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주변 사람들은 나를 나무랐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왜 울지 않는 거야?”
하지만 엄마는 나를 혼내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말했다.
“할머니 이제 가시면 다시 안 온다. 가서 마지막 인사하고 와. 울지 않아도 되지만 사람들이 보는 눈이 있으니까 우는 흉내라도 내고 와.”
그때는 몰랐다.
엄마는 내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찾은 엄마
절망의 순간 하나님을 붙잡게 된 이야기는 이 글에서 더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내 인생이 가장 힘든 시간을 지나갈 때, 엄마는 또 강해져야 했다.
믿음이 없었던 엄마는 딸을 살리기 위해 교회 문턱이 닳도록 다녔다.
글도 제대로 읽지 못했던 사람이 성경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매일 찬송을 불렀다.
가족들은 놀랐다.
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 변화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변화는 아버지와 또 다른 갈등을 만들었다.
제사를 중요하게 여기던 아버지는 결국 분노했고, 집 안에는 서로 다른 믿음이 충돌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그럼에도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믿음은 단순한 종교가 아니었다.
자식을 살리고 가족을 붙잡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끝까지 아버지를 사랑했던 엄마
아버지가 병으로 마지막 시간을 보내게 되었을 때도 엄마는 강해야 했다.
평생 자신을 힘들게 했던 남편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내의 자리를 지켰다.
목사님을 집으로 모셨고, 아버지가 하나님을 받아들이도록 기도했다.
그 순간 아버지는 예수님을 영접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진짜 믿음일까, 아니면 마지막 순간의 선택일까.”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과 아버지 사이의 일이었다.
엄마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했다.
강했던 엄마도 이제는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엄마를 찾아 한국으로 향했던 시간, 그리고 여전히 내 마음속에 살아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또 다른 이야기로 남아 있습니다.
→ 친정어머니와 아버지 나무|내 삶의 뿌리가 되어준 부모님
나는 엄마가 언제까지나 강할 줄 알았다.
나의 성을 지켜주는 장군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엄마의 목소리는 달랐다.
“엄마, 들려?”
“누구냐?”
“엄마, 경화야. 미국에 있는 딸.”
“누구?”
“경화라고…”
“아… 경화구나.”
그 말 이후 엄마는 다시 요양원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는 내가 누구인지 잠시 잊었다.
미국에서 걸려온 딸의 전화라는 것도 몰랐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평생 나의 성을 지켜주었던 강한 엄마도 시간이 지나면 보호받아야 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그래서 울었다.
엄마가 약해져서가 아니라,
그토록 강했던 사람이 이제는 나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미국이라는 먼 거리에서 부모님의 시간을 바라보며 느꼈던 그리움은 또 다른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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