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돕의 땅에서 피어난 믿음, 입다의 인생
이민 생활이 지쳐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왜 내가 이 먼 미국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던 날들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문득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늘은 성경 속 인물인 입다의 이야기를 통해 그 믿음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입다의 상처받은 어린 시절
입다는 므낫세 지파 사람이었지만, 집안 안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출생 때문이었습니다. 입다의 어머니는 창녀의 신분이었고, 그는 이복형제들과 다른 시선을 받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형제들은 입다를 업신여겼고, 시간이 지나 아버지의 유산 문제까지 얽히게 되자 결국 입다를 고향에서 쫓아내 버립니다. 그렇게 입다가 도망치듯 향한 곳이 바로 ‘돕’이라는 땅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돕(Tob)’이라는 이름의 뜻입니다.
히브리어로 ‘좋은 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입다에게 그곳은 결코 좋은 땅이 아니었습니다. 버림받은 상처와 억울함, 외로움이 가득한 광야 같은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낯선 땅에서 살아가던 입다는 하나님이 자신을 왜 그곳으로 보내셨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입다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돕 땅에는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 거칠고 강포한 사람들이 입다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입다에게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지도력과 담대함을 주셨고, 그는 그들 가운데 자연스럽게 지도자가 되어 갔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입다
그리고 어느 날, 므낫세 지파에 큰 위기가 찾아옵니다.
암몬 자손이 전쟁을 일으키려 하자 아무도 나서서 싸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장로들은 자신들이 쫓아냈던 입다를 찾아갑니다.
한때는 버렸던 사람에게 이제는 머리를 숙이며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인간적인 마음이었다면 거절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입다는 달랐습니다. 그는 상처보다 하나님 뜻을 먼저 바라보았습니다. 결국 그는 그 요청을 받아들이고 전쟁에 나아갔으며, 하나님께서는 입다에게 큰 승리를 허락하셨습니다.
입다의 서원과 딸의 순종
입다는 승리 후 하나님께 서원합니다.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하는 이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가장 먼저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외동딸이었습니다.
입다의 딸은 원망보다 순종을 선택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 드린 서원을 존중하며 평생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입다 또한 마음 아픈 현실 앞에서도 하나님과의 약속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돕의 땅에서 남겨진 믿음의 유산
입다의 믿음은 단순한 감정적인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억울함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버려진 자리에서도 믿음을 놓지 않았으며, 기다림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실 때를 묵묵히 견뎌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인생 가운데 ‘돕’이라는 땅에 던져졌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원하지 않았던 환경, 외로운 이민 생활,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돕의 땅을 결국 좋은 땅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입다가 쫓겨난 땅에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인생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지금의 광야 같은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를 보내신 곳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으며, 하나님은 가장 힘든 자리조차도 은혜의 자리로 변화시키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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