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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in America/Living in Illinois

사랑한다 뉴욕

by Deborah 2020. 4. 3.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 안톤 시냐크 글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게다가 가을비는 쓸쓸히 내리는 사랑하는 이의 발길은 끊어져
거의 한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아무도 살지 않는 고궁.
그 고궁의 벽에서는 흙덩이가 떨어지고 창문의 삭은 나무 위에는
"아이세여, 내 너를 사랑하노라......."는 거의 알아 보기 어려운 글귀가
씌어 있음을 볼 때.




숱한 세월이 흐른 후에 문득 발견된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
편지에는 이런 사연이 씌어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 소행들로 인해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잠 못 이루며 지새웠는지 모른다......"
대체 나의 소행이란 무엇이었던가.
하나의 치기어린 장난, 아니면, 거짓말, 아니면 연애 사건이었을까.
이제는 그 숱한 허물들도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는데,
그때 아버지는 그로 인해 가슴을 태우셨던 것이다.

 

동물원의 우리 안에 갇혀 초조하게 서성이는 한 마리 범의 모습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언제보아도 철책가를 왔다갔다 하는 그 동물의 번쩍이는 눈,
무서운 분노, 괴로움에 찬 포효, 앞발에 서린 끝없는 절망감,
미친 듯한 순환, 이 모든 것은 우리를 더없이 슬프게 한다.


휠덜린의 시, 아이헨도르프의 가곡.
옛 친구를 만났을 때. 학창 시절의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그것도 이제는 그가 존경 받을 만한 고관대작,
혹은 부유한 기업주의 몸이 되어, 몽롱하고 우울한 언어를 조종하는
한낱 시인밖에 될 수 없었던 우리를 보고 손을 내밀기는 하되,
이미 알아 보려 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할 때.



사냥꾼의 총부리 앞에 죽어가는 한 마리 사슴의 눈초리.
재스민의 향기. 이 향기는 항상 나에게
창 앞에 한 그루 노목(老木)이 섰던 나의 고향을 생각하게 한다.

공원에서 흘러오는 은은한 음악 소리. 꿈같이 아름다운 여름 밤,
누구인가 모래 자갈을 밟고 지나가는 발소리가 들리고
한 가닥의 즐거운 웃음 소리가 귀를 간지럽히는데,
당신은 여전히 거의열흘이 다 되도록 우울한 병실에 누워 있는 몸이 되었을 때.



달리는 기차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어스름 황혼이 밤으로 접어드는데, 유령의 무리처럼 요란스럽게 지나가는
불 밝힌 차창에 미소를 띤 어여쁜 여인의 모습이 보일 때.

화려하고도 성대한 가면무도회에서 돌아왔을 때.
대의원 제씨(諸氏)의 강연집을 읽을 때.
부드러운 아침 공기가 가늘고 소리 없는 비를 희롱할 때.
사랑하는 이가 배우와 인사할 때.


공동묘지를 지나갈 때, 그리하여 문득
"여기 열다섯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난 소녀 클라라 잠들다"라는 묘비명을 읽을 때.
아, 그녀는 어린 시절 나의 단짝 친구였지.

하고한 날을 도회(都會)의 집과 메마른 등걸만 바라보며 흐르는 시커먼 냇물.
숱한 선생님들에 대한 추억. 수학 교과서.

오랫동안 사랑하는 이의 편지가 오지 않을 때.
그녀는 병석에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녀의 편지가 다른 사나이의 손에 잘못 들어가,
애정과 동경에 넘치는 사연이 웃음으로 읽혀지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녀의 마음이 돌처럼 차게 굳어버린 게 아닐까?
아니면 이런 봄밤, 그녀는 어느 다른 사나이와 산책을 즐기는 것이나 아닐까?

초행의 낯선 어느 시골 주막에서의 하룻밤.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
곁 방문이 열리고 소곤거리는 음성과 함께 낡아빠진 헌 시계가
새벽 한 시를 둔탁하게 치는 소리가 들릴 때.
그때 당신은 불현듯 일말의 애수를 느끼게 되리라.





날아가는 한 마리의 해오라기.
추수가 지난 후의 텅빈 논과 밭.
술에 취한 여인의 모습.
어린 시절 살던 조그만 마을을 다시 찾았을 때.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당신을 알아보는 이 없고,
일찍이 뛰놀던 놀이터에는 거만한 붉은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데다
당신이 살던 집에서는 낯선 이의 얼굴이 내다보고,
왕자처럼 경이롭던 아카시아 숲도 이미 베어 없어지고 말았을 때.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어찌 이것뿐이랴.
오뉴월의 장의 행렬(葬儀行列).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 바이올렛색과 검정색.
그리고 회색의 빛깔들. 둔하게 울려오는 종소리.징소리. 바이올린의 G현.
가을 밭에서 보이는 연기.
산길에 흩어져 있는 비둘기의 깃.
자동차에 앉아잇는 출세한 부녀자의 좁은 어깨.
유랑극단의 여배우들. 세번째 줄에서 떨어진 어릿광대.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휴가의 마지막 날.
사무실에서 때묻은 서류를 뒤적이는 처녀의 가느다란 손.
만월(滿月)의 밤, 개 짖는 소리.
"크누트 함순"의 두세 구절.
굶주린 어린아이의 모습.
철창 안으로 보이는 죄수의 창백한 얼굴.
무성한 나무 위로 내려앉는 하얀 눈송이-
이 모든 것 또한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안톤 슈낙의 우리들을 슬퍼게 하는 것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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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슈낙(Anton Schnack, 1892-1961) 
독일 남프랑컨주 리넥 출생. 리넥 김나지움을 졸업함. 
다름슈타드, 만하임, 프랑크푸르트 등지에서 신문기자 역임. 
두 차례 세계 대전에 참전(2차 대전중 전쟁 포로 생활). 
1945년 포로 생활에서 풀려나 작품 활동을 시작함. 
저서로는 시집 <욕망의장>, 장편소설 <사랑의 후조> 등이 있음.


필자는 아침에 일어나면 하는 일이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현황을 집계해서 현재 상태를 업로드하는 일이었다. 오늘 뉴욕의 사람들이 많은 인명 피해와 확진자 수치를 보고 눈물이 나왔다. 하나님은 뉴욕을 버리신 건가요? 너무 가슴이 아팠다.

New York

총확진자: 93,053

사망자: 2,538

현재확진자: 83,081

New Jersey

총확진자:25,590

사망자:537

현재확진자:25,053

우리를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은 코로나바이러스 었다.

사랑한다 뉴욕.

잘 참고 견디어라.

코로나 꺼져!!!

 

여러분~~ 뉴욕 응원의 댓글 부탁혀유~~

 

지금 미국의 현상을 잘 설명 해주는 포스터 사진 (이웃님 블로그에서 가져 옴)

 

 

상식이야기. 자유의 여신상 유래. 더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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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여신상(Libery Enlighting the World, 프랑스어: La Liberté éclairant le Montde)은 미국 뉴욕항 리버티 섬에 있는 거대한 신고전주의 조각상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미국 사람들에게 준 선물인 동상은 프랑스의 조각가 프레데릭 오귀스트 바르톨디가 디자인했고 그 금속 골격은 구스타브 에펠이 만들었다. 이 동상은 1886년 10월 28일에 헌납되었다.

이 동상은 로마의 자유의 여신인 리베르타스의 형상이다. 그녀는 오른손으로 머리 위로 횃불을 들고, 왼손에는 미국 독립선언의 날짜인 JULY IV MDCCLXXVI(로마 숫자로 1776년 7월 4일)라고 적힌 타블라와타 한 장을 들고 있다. 그녀가 최근 노예제도를 폐지한 것을 기념하며 앞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부러진 족쇄와 쇠사슬이 그녀의 발 앞에 놓여 있다. 그 헌신이 끝난 후, 그 동상은 자유와 미국의 상징이 되었다. 그것은 바다를 통해 입국하는 이민자들에게는 환영할 만한 광경이었다.

바르톨디는 1865년 프랑스의 법학 교수이자 정치인인 에두아르 르네 드 라불레이에 의해 영감을 얻었는데, 그는 1865년 미국의 독립을 위해 세워진 어떤 기념물도 프랑스와 미국 국민의 공동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프랑스의 전후 불안정성 때문에 1870년대 초에야 동상에 대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1875년 라불레이는 프랑스에 동상 자금과 미국이 이 부지를 제공하고 받침대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바르톨디는 동상이 완전히 설계되기 전에 머리와 성화를 들고 있는 팔을 완성했고, 이 작품들은 국제 박람회에서 홍보용으로 전시되었다.

횃불을 든 팔은 1876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100주년 박람회와 1876년부터 1882년까지 맨해튼의 매디슨 스퀘어 공원에서 전시되었다. 기금 조성은 특히 미국인들에게 어려운 것으로 판명되었고, 1885년까지 받침대 위의 작업은 자금 부족으로 인해 위협을 받았다. 뉴욕월드의 출판사인 조셉 퓰리처는 이 프로젝트를 끝내기 위해 기부 운동을 시작했고 대부분 1달러도 안 되는 기부자들을 끌어들였다. 이 동상은 프랑스에서 세워졌고, 상자로 해외로 운송되었고, 당시 베들로의 섬이라고 불렸던 위에 완성된 받침대 위에 조립되었다. 이 동상의 완성은 뉴욕 최초의 티커 테이프 퍼레이드와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이 주재하는 헌신행사로 특징지어졌다.

이 동상은 1901년까지 미국 등대보드에 의해 관리되었고, 그 후 전쟁부가 관리하였다; 1933년부터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자유의 여신상 국립기념물의 일부로 관리하고 있으며, 주요 관광명소다. 그것은 2019년 코로나바이러스 유행병으로 인해 2020년 3월 16일부터 문을 닫았다. 1916년부터 성화 주변 발코니에 대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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