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국에서 보내온 편지 한통
8년을 기다린 결과로 받은 이민허가서
마음은 기뻐해야 하는데 기쁘지 않다.
"동생을 초청에 관해서 알고 싶은게 있어서 전화했어요."
"이민비자를 말하시는 거죠?"
"네.."
"그럼 서류에 I130비자라고 나와 있나요?"
"네."
"그럼 맨위에 보시면 1-797라는 숫자가 있지요?"
"네.."
"오! 그래요. 그럼 동생 그린카드를 발급을 받을수 있는거에요. 서류를 작성해서 신청을 해야해요. 그건 변호사를 선임하셔서 해야할거에요.'
"아 그렇군요. 그럼 변호사 선임 하면 돈이 많이 드나요?"
"아니에요. 지금 마지막 단계기때문에 돈을 많이 주지 않아도 될겁니다. 일딴 서류를 저한테 보내 보세요. 내일 변호사님과 약속이 있어요. 제가 상세한건 여쭤 볼게요."
"감사합니다. 오늘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위의 전화 내용은 주변에 있는 지인에게 연락을 해서 알아 본 결론으로는 이제 한국에 있는 동생이 미국으로 들어 올수 있다는 기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비자를 신청한지는 8년전 일이다. 더디어 동생이 미국으로 오는가 하니 마음은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프다.
8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동생에게는 많은 일이 일어 났나보다. 작년 부터 정신적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아니면,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것은 과거의 충격으로 말미암아 지금은 정신병원에 있습니다. 의사 말로는 조울증이라고 합니다. 조울증은 치료가 힘들다고도 하는데 어떻게 잘 치료를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마음이 아픈것은 미국으로 오기로 했던 동생이 지금 올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동생이 한 말이 생각 납니다.
"언니야.. 미국에 가서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어."
왜.. 한국에서 사는게 힘드니?"
"아니.. 그냥 모든것 잊고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
이런 말만 했던 동생의 말을 돌이켜 보면 무슨 상처가 단단히 있을 법한데도 그것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를 나누지를 못했습니다. 나중에 알게된 사연이지만, 개척 교회를 알게되고 교회를 다니면서 그곳에서 무슨일이 일어 났다고 합니다. 확실한 사연을 알지 못하는 그런 상황에서 그저 추리에 가까운 생각만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예전에 올렸던 글을 보시면 어떤일이 동생에게 일어 났는지 짐작 하실 수 있을겁니다. 동생으로선 끔찍한 경험을 했다고 봐야겠습니다. 교회측에선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를 해서 찾아 와서 기도를 해주겠다고 했다고 하는데요. 어머님께서 거절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 딸에게 더 이상 상처를 주지 말라는 경고와도 같은 말이겠지요.
아직도 젊은 30대 초반의 나이에 초대 교회를 잘못 찾아 들어가서 이런 큰 상처가 되었고, 언니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어 마음만 아픕니다. 옆에 있어 달래줄수도 없는 상황이고, 멀리서 애타는 가슴이 오늘도 한숨만 가득합니다. 상처를 받아서 그곳으로 부터 도망을 친다는 사실은 현명한 선택 같지는 않지만,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듯 말했던 지난날의 이야기를 되새김질 해보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면 그랬을까 하는 짐작만 할뿐입니다. 내가 옆에 있어주지 못함이 그저 미안할 뿐입니다.
이제는 미국으로 올 수 있을지, 한국에 남아서 고통스런 삶을 살아야할지.. 그것에 관한 결정을 내릴 사람은 바로 동생 몫이겠지요.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한국에서 견디고 이겨내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동생이 겪었던 일들을 생각하면 차마 말을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참조할 댓글이 있어 올려 봅니다.
지나가다님의 댓글
님께서 받으신 통보서는 영주권 신청을 할 수 있는 초청 패티션이 승인이 났다는 통보이고...
이민국에서 매달 발표하는 영주권 우선일자 문호표를 보면,
최근 발표한 2010년 2월 문호 풀리는 우선날짜가 1999년 11월 15일인가?그렇답니다.
그러니 위의 서류에 있는 님의 우선날짜(Priority Date)인 2002년 4월 11이 도래할 싯점까지
앞으로 2년여를 기다리셔야 하겠고,
다른 수속보다 형제초청수속은 적체가 심해 우선날짜 문호가 풀려도 수속까지의 대기기간을 또 기다리셔야 할 것입니다..(그린카드 받는 예상시기=3년반 이후)현재로선 진행이 이런데..오바마 정부의 이민개혁법 추진으로 빨라질 지....
저의 경우도 형제초청인데 2004년 여름에 접수했는데 2년만에 승인받았답니다.그렇지만 저의 우선날짜는 2004년 여름이니 님보다 한참후에 그린카드를~~~ㅠㅠ 요게 첫번째 부러움이고..^^
저 같은 사람은 자식이 있어 승인이 늦게 났어야 유리한데 7년 걸린 님의 승인시기가 두번째 부러움 ^^..
수속싯점의 자녀나이에서 그간의 기다린 기간을 빼줘서 21세 미만이어야 같이 가거든요ㅠㅠ)
이렇듯,승인 받은 사람들이 바로 수속들어가는 것이 아니니....
이민국에서 매달 발표하는 문호날짜 꾸준히 지켜보시면서 님의 해당 우선날짜 도래시기를 예상하면서 준비하시면 되겠습니다.
부디..동생을 생각하는 님의 마음이 하늘에 닿아 모든게 순조로히 얼른 얼른 진행이 되길 기원합니다.
결론
내 여동생은 2년후의 미 정부에서 입국 허가서가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오는것을 포기 했었다. 이유인즉슨, 미국이라는 나라에 와서 산다는것이 그녀에게는 큰 모험일뿐이였다. 두려움 그 자체였다. 결국 필자는 남편한테 잔소리를 두 바가지 정도는 들었던 기억이 난다. 여태 부어 놓은 돈만해도 백만원이 들었으니 울 님의 입장에선 당연한것일 수 밖에 없다.
울님의 마지막으로 내게 던진 말이 마치 경고와도 같았다. " 다시는 이런 부탁 하기만 해. 난 안 들어 줄꺼야." 말은 이렇게 해도 내가 해달라면 뭐든 다 해주는 분이 바로 나의 반쪽이시다. 어찌되었던간에, 필자의 여동생은 미국에 오지 않았다. 지금은 한국의 어느 촌 동네에서 필자의 친정 어머님과 함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