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링컨의 연설이 담겨 있던 손으로 직접 쓴 게티즈버그 연설문입니다. 현재 남아 있는 카피는 5개밖에 없을 정도로 아주 귀한 문서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반가움이 앞섰다. 역사적인 게티즈버그 연설문을 직접 볼 기회가 온 것이다.
신문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별거 없겠지, 하고 지나치다 우연히 발견한 기사 내용입니다.
미국 시카고에서는 200년 링컨 탄생일을 맞이하여 역사박물관에 링컨의 손으로 작성된 게티즈버그 연설문을 전시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현재 5개의 카피만 존재하고 있고 소장 가치가 아주 높은 역사적인 기념물이라고 합니다. 시카고 역사박물관에는 링컨의 절반 연설문이 전시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1863년 링컨이 펜실베이니아의 게티즈버그에서 연설한 내용입니다. 남북전쟁(Civil War)중에 에버레트 카피로 알려졌고, 나중에는1964년에는 정치가 에드워드 에버레스트가 소개하면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일리노이주에서는 1944년에 사드렸습니다. 나중에 어린 학생들이 40만 불을 성금으로 벌었으나 마셜 피드 6는 24만 불에 기증을 했습니다. 왜 이 케티즈버그 연설이 유명한가 하면 미국의 중요한 역사적인 연설을 링컨이 했습니다. 여기에서 모든 사람은 다 평등하다는 것을 연설했습니다. 링컨의 국민을 향한 정치를 펼치겠다는 그의 신념이 담긴 연설이기도 했습니다. 이 연설문은 시카고 역사박물관에서 4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전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링컨이 남겼던 유명한 연설의 일부분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칠까 합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오늘날 한국의 정치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진정한 국민을 위한 정치 국민에 의한 정치 국민의 정치는 이제는 사라져 가는 것일까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링컨의 연설문이 오늘날 가슴에 비수로 꽂힙니다.
미국의 남북전쟁에 대해서 알고 싶으신 분은 더보기를 클릭
남북 전쟁 (南北戰爭, :American Civil War, 줄여서 Civil War)은 미국에서 일어난 내전으로1861년 4월,남부동맹군(이하 "남군")이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 항의 섬터 요새를 포격하는 것으로 시작되어 1865년까지 4년
동안 벌어진 전쟁이다. 남군이 패했다.
남북 전쟁 이전의 미국을 살펴보면 영국과의 독립전쟁 이후 통합전력의 필요성과 Shay의 반란의 영향으로 기존에 유지해온 연합형태에서
1786년 연방헌법의 제정을 통해 연방정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연방의 설립 이후에 남부와 북부는 노예제를 배경으로 정치, 경제,
사회면에서 분열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이러한 남북의 대립은 악화될 때마다 타협안으로 다소 대립이 저지될 수 있었으나 자유주와 노예주라는 상호
배타적인 원리 하에서 연방의 존속이 불가능하였다.
노예제를 둘러싼 남북 간의 갈등양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830년 남북은 미주리 타협을 통해 미국영토를 위도 36°30′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갈라서 남쪽 지역에는 노예제를 인정하고 북쪽 지역에는 노예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영토의 획득으로 1850년
남북은 캘리포니아에는 노예제를 부활하지 않지만, 뉴멕시코와 유타지역에는 해당지역 주민들이 투표로 노예문제를 결정하기로 타협했다. 그러나
1854년 노예제를 확장하려는 캔자스-네브래스카법이
제정되었다. 이에 반대하여 휘그당과 자유토지당이 중심이 되어 공화당이 창당되게 되었고 1856년 링컨이 노예반대를 표방하여 대통령선거전에 참가하게 되면서 남북 간의 갈등양상은 심화되어
갔다.
1860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링컨이 당선되자 이에
위기감을 느낀사우스캐롤라이나 주가 마침내 가장 먼저 분리독립하고 이어 남부의 다른 주들이 속속 분리독립, 남부동맹을 결성하였다. 미국 역사상 지극히 짧은
남북국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게티즈버그 연설(Gettysburg Address)은 에이브러햄
링컨이 남북
전쟁중이었던 1863년11월 19일, 미국펜실베이니아
주게티즈버그에서 했던 연설이다.
이 연설은 게티즈버그
전투가 있은 후 4개월 후에 전장에 세워진, 당시 숨졌던 병사를 위한 국립 묘지 봉헌식에서 이루어졌는데,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이 인용된
연설 중 하나이자, 가장 위대한 연설로 손꼽힌다.
링컨이 신중히 초안을 짠 이 연설은 당시 두 번째 연설로 거행되었다. 그 내용은 300 단어가 채 안되며 연설은 불과 2~3분 만에 끝이
났다. 하지만 그 내용에는 미합중국 독립선언서에 나타난 인간 평등의 원칙과, 남북전쟁이 단순한 결합이 아닌 모든 국민들에게 참 평등을 가져다 줄 "자유의 재탄생"을 위한
투쟁임을 상기시키는 내용이 들어갔다.
이젠 상징이 되어버린 "87년 전"(Four score and seven years ago)으로 시작되는 연설에서 링컨은, 이 봉헌식을
단순히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숨진 병사들을 위한 것뿐만 아니라,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가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도록"(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싸우고 있는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헌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연설의 이러한 역사적 위치와 관심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연설 내용에 대해선 논란이 많다. 게티즈버그 연설의 필사본은 5개가
알려져 있는데, 각각은 여러 가지 세부 사항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연설의 전문은 추측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