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의 선택 그 이후

from Life 2007.01.27 03:53

진실된 사랑은 좋은 날에 서로 곁에 있어주며, 힘든 날은 더 가까이 곁에 있어 주는것.

 

 

우리는 6개월간의 달콤한 테이트를 마치고 더디어 아름아움의 절정을 치닫고 있던

8월25일날 결혼을 했다..우리의 아름다운 결혼을 위해 주위의 많은 분들이 수고를 해

주시고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던 그때를 회상해 본다. 

그래도 그때는 이 사람이면 모든것을 헤쳐가고 견디면서 살아 갈수 있었다. 막상 결혼이 현실로 다가와 살아 보니 연애때와 같이 생활 하면서 보는 남편의 모습은 내가 알지 못했던 내 남자를 알아 가는 과정이 되었다. 우리의 신혼 살림을 왜관 7층 맨션 아파트에서 시작을 했다. 결혼후 3개월이 지난후에서야 나는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그것이 주님이 주신 나의 가장 큰 축복의 선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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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해에 어느 여름날에 우리는 사랑의 항해를 하기 위해 돛을 미국을 향해 돌려야 했다. 남편의 다음 근무지가 하와이로 발령이 났던것이다. 또 하나의 축복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와이로 인도 하셨다는 점이다.
 
하와이는 낭만이 넘쳐나고 젊음이 생동하는 도시였다. 하이와는 네개의 섬으로 나누어졌다. 그 중에서 방문한 곳이 멜라카이, 빅 아일랜드였다. 멜라카이는 쥬라기공원이 촬영된 장소로 유명하다. 우리 부부는 직접 헬리콥트를 타고 쥬라기 공원이 촬영되었던 장소를 구경했던 시절이 생생하게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렇게 우리는 하와이에서 미국 생활을 정식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남편은 싱글때 하던 습관이 그대로 있었고, 그의 나이 24살이였으니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든다. 우리는 철부지 부부였다고 말하면 맞을것이다. 남편을 어떻게 내조를 해야하는지도 몰랐었고, 다들 장교 부인이라고 하면 봉사활동도 많이 하는데 그런것을 전혀 할 생각 조차도 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결혼 7주 기념사진 (RockFord, IL주에서)


그렇게 하와이에서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에 기도해서 얻었던 큰 아들 (한울이)를 품에 안게 되었다. 한국에서 친정 어머님이 오셔서 산후조리를 도와 주셨고 딸이 사는 모습을 보시고 우시던 그때가 생각난다. 어머님은 말했다.

"난..네가 어떻게 사는지 알겠다면서 ㅠㅠ.. 옛날에 한 성격한 네가..이젠 기가 다 죽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남편에게 길이 들여진것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나를 기를 들이셨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오고 말았다.

어머님은 한국에 있을때, 나를 기도원으로 보냈다. 방황기였던 20대의 혼란시기를 어쩔 수가 없어 멋대로 살아 가는 모습이 마치 내가 미친 사람으로 보셨던것 같다. 그래서 나를 기도원에서 마음의 수양을 받으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 올꺼라 믿으셨다.

나의 방황의 시작은 20대 초반으로 들어간다. 고등학교를 실업계를 졸업하고 얻었던 첫 직장 회식을 마친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토바이를 탄 네명의 남자가 집으로 데려다 준다는 말을 믿었던 나의 어리석음이 큰 변을 당하는 사건으로 연결되고 만다. 아마도 그 당시에 나의 생각을 마비 시켰던 모든것은 한국 남성에 대한 불신 불만이 가득했던것 같다.

이런 큰 사건이 20대 초반에 일어나고 친정 언니의 도움으로 화장품 가게를 차렸다. 하지만, 그것도 몇달 가지 않아서 파산하게되고 내 스스로 설 힘 조차 얻지 못한 채 살아가는 하루가 지옥 같았던 날이 있었다. 이런 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어머님은 기도원에서 만났던 전도사님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를 잊지 못해서 남편과 결혼한 일년이 지난 후에 친정 집으로 연락이 왔다는 이야기를 해주신다.

그 당시의 사건들을 종합 해보면 나의 특별한 인연과 사랑은 따로 있었던 것 같다. 남편을 만나서 나의 상처가 치료 되었고, 살아가는 희망을 갖게 되었던것이다. 그래서 난 자신있게 말할 수가 있다. 남편이 나의 반려자이자, 내 삶의 일부분이라고.

 
 
 어제 남편과 테이트를 하면서 교회 목사님 집에서 마련해준 야외 영화 스크린린 덕분에 오붓하게 좋은 시간을 나누게 되었다. 신혼초에 남편이 내게 늘 했던 말이 있었다. 나의 부탁에 대한 대답을 늘 그는 이렇게 말했다. "As your wish"(당신이 원하신다면) 알고 보니 그것이 영화의 대사말이였다. 그래서 웃을 수밖에 없었던 그 사람. 그와 옛추억을 더듬어 보면서 "princess bride"영화를 보면서 수없이 나를 향해 외쳐 주었던 그 말을 기억해 내게 되었다. 그가 했던 당신이 원한다면의 깊은 말뜻은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였다. 

참고로 위의 글은 2007년 1월 27일 작성되었던 수필이였다.  지난글을 읽으면서  나름 수많은 사연들이 있을 법한 국제 결혼 커플들의 이야기가 스쳐 지나간다. 내가 말하고 싶은것은 국제 결혼은 결코 쉬웠던 선택이 아니였으며, 그로 인해서 부모와 생 이별을 해야 하는 그런 고통을 겪고 나의 나머지 삶을 타향이라는 낯선 외국의 땅에서 살아야만 했었다. 23년의 결혼은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고 마음의 수양과 더불어 내 삶의 중심이 된 그분을 의지하면서 살아 왔던 삶이였다. 이젠 자신있게 말할 수가 있다. 사랑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고 그 사랑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당신의 삶을 최고로 만들 수가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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